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관매도 하늘다리

아름답고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 지닌 '작은 거인'

관매도에는 볼 것들이 많다. 자그마한 다도해의 섬 하나가 이렇게 많은 것을 품고 있으니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한다. 한 사람이 5, 6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것 같기도 하고 구기 종목의 만능선수가 공을 다루는 듯하다.

관매도에 관한 글을 쓰면서 곰솔밭과 꽁돌 이야기만 쓰고 그만두려 했다. 그런데 하늘다리가 자꾸만 눈에 밟혀 쓰지 않으면 빚을 지는 것 같았다. 이곳 섬사람들은 관매도를 처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다른 것은 제쳐 두더라도 "꽁돌과 하늘다리는 꼭 보고 가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돈대산 갈림길에서 1.7㎞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산길 걷기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은 해변 입구에 있는 꽁돌만 보고 돌아서기 때문이다. 꽁돌 해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뒷재에서 하늘다리까지는 땀 한 번 흘리면 도달할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하늘다리는 거대하거나 웅장하지 않다. 바위가 수직으로 갈라진 3, 4m의 폭을 건너뛸 수가 없어 철골다리로 연결해둔 곳이 바로 하늘다리다. 작은 돌을 밑으로 던지면 13초 정도 걸리는 직벽이다. 옆에서 누가 말했다. "오줌을 누면 세계 최초로 오줌 줄기의 알파(시작)와 오메가(끝)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작지만 아름답고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이를 흔히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 가수 조용필과 김수철을 한 때 '작은 거인'이라 부른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아침 이슬'의 김민기,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작곡한 이장희, '서른 즈음에'의 김광석까지 작은 거인 반열에 올린다 해도 토를 달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관매 하늘다리가 바로 '작은 거인'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늘다리 또는 구름다리로 명명되는 산봉우리 이쪽저쪽으로 걸쳐있는 다리는 여러 개가 있다. 나열하면 금산의 대둔산 구름다리(길이 50m, 높이 81m, 너비 1m), 순창 강천산 하늘다리(길이 78m, 높이 50m, 너비 1m), 영암 월출산 구름다리(길이 52m, 높이 120m, 너비 0.6m), 봉화 청량산 하늘다리(길이 90m, 높이 70m, 너비 1.2m) 등이 대표적이다.

이 다리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심미안적 미적 기준으로 볼 때 관매 하늘다리를 능가하지 못한다. 관매의 작은 거인은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그러니까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고, 연필 길다고 시험 잘 치냐'는 시쳇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토리텔링 시대에 스토리를 안고 있는 것이다.

관매도 동북쪽 방아섬에 불끈 힘주고 서 있는 남근바위 밑으로 하늘나라의 선녀들이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선녀들은 점심때가 되면 이곳 하늘다리 밑 바닷가로 날아와 날개를 벗고 목욕도 하고 밥을 지어 먹었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한 생각이 떠올랐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인 폴 고갱이 좀 더 일찍 태어나 태평양 한복판의 타히티 섬으로 가지 않고 이곳 관매도로 와 밥 짓고 목욕하는 선녀들을 만났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뚱뚱하고 못 생긴 원주민 처녀들만 그렸다. 화집을 꺼내 고갱이 그린 원주민 처녀들에게 관매도 선녀의 날개옷을 입혀 보았다. 누드는 누드인데 괴상망측했다.

하늘다리 밑 해변으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다. 밀물 때 바닷물이 들면 바다로 떨어지고 썰물 때는 몽돌 자갈 위로 떨어진다. 이곳 주민들은 음력 7월 백중 때 선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밥을 지어먹고 폭포수를 맞으면 '피부병도 낫고 아기도 갖는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관매도에는 매년 잘 생긴 청년을 제주로 추대하여 하늘담에서 당제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제주로 뽑히면 전후 2년 동안 처녀를 만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 제주 청년이 사귀던 처녀를 아무도 모르게 만났다. 그랬더니 갑자기 컴컴해지면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섬의 한쪽이 날아가 깎아지른 절벽으로 변해 버렸고 처녀 총각도 즉사했다. 그들의 혼이 다리여 서들바굴의 구렁이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바닷가 전설은 왜 사랑하는 처녀 총각만을 제물로 올려 풍랑에 죽고 벼락 맞아 죽게 했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우리나라 전설 속에서 허무하게 죽어버린 선남선녀들이 모두 살아 자손을 번성시켰으면 요즘 같은 저출산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됐을 텐데. 아이고, 아까워라.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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