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장사는 안 되는데 가겟세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올랐거든요. 결국 가장 끝쪽으로 떠밀려 왔습니다."
약령시 동쪽 입구에서 4년간 약업사를 운영했던 김모(50) 씨는 올 5월 약령 서문 쪽으로 약업사를 옮겼다. 2년 전 약령시 남쪽에 현대백화점이 들어서면서 건물 주인이 월세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약령시 동쪽은 동성로와 가까운 데다 현대백화점, 동아쇼핑과도 상대적으로 가까웠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가겟세가 곱절로 뛰었다. 김 씨는 "약령시를 오가는 젊은 사람은 늘었지만 한약을 사러 오는 사람은 오히려 줄었다. 이사를 하지 않으면 가게를 유지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비워준 기존 약업사 자리에는 한식당이 들어섰다.
대구 약령시의 대표적 상점이던 약업사 등 한방 관련 업소가 약전골목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약령시를 가득 메웠던 한방 관련 업소는 사라지거나 주변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기존 한방 관련 업소 자리는 커피전문점, 식당, 주차장 등이 대신하고 있다. 2009년부터 약업사로 쓰이던 가게 중 현재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으로 바뀐 곳은 모두 14곳. 중장년층이 주로 오가던 약령시 거리는 백화점, 영화관 등을 찾는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약령시의 변화는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인근에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대백화점 신축 공사가 시작된 2009년부터 한방 관련 업소가 하나 둘씩 문을 닫았다. 약령시 인근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임차료도 덩달아 껑충 올라버린 것. 2009년 210개였던 한방업소는 현재 183개로 줄었다. 일부는 가겟세가 저렴한 골목길, 건물 2층, 약령서문 방면 등으로 옮겼다. 심지어 2년 전 약업사만 6곳이 있던 건물은 현재 약업사 한 곳만이 남아있을 정도다. 20년째 약령시에서 약업사를 운영하는 송모(60) 씨는 "지난해 가겟세가 감당이 안 돼 가게 규모를 반으로 줄였다. 이제는 골목길에도 가게를 낼 만한 자리가 없어 가게를 옮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약령시 상인들은 약령시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식생활의 변화로 한약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주변 환경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정작 약령시를 보존하려는 대책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인 박모(51) 씨는 "약령시는 350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구의 자랑거리이지만 이대로 가면 약령시는 이름만 남게 될"이라며 "지금은 약령시의 주인인 한방 관련 업소가 식당이나 커피전문점보다 못한 꼴"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의료산업과 관계자는 "약령시를 문화지구로 지정해 타 업종의 진출을 제한하려는 노력을 해봤으나 건물주의 반발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다만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약령시 한방문화축제, 한방웰빙체험관 설립 등을 통해 한방과 사람들이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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