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늘의 추억이 1년 후에 배달됩니다"

이상화 고택 옆 설치 '느린 우체통' 인기

"오늘의 추억이 1년 후에 배달됩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365일이 지나야만 받아볼 수 있는 '느린 우체통' 이 대구지역에 처음 세워져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구의 대표적 관광지인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에 설치된 빨간색 원통형 우체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우체통은 '대구 근대골목' 코스의 하나로 처음엔 관광객들의 사진촬영용 장식품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몇 달 후 이곳에 상주하는 문화해설사가 청소를 하기 위해 우체통 안을 열어보니 편지와 엽서 등 우편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이에 중구청은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패스트푸드, 퀵서비스 등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요즘 시대와 맞지 않게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우체통에 접목시켜 본격적으로 우편물 접수를 시작했다. '골목투어' 관광객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올 4월에 오픈한 느림보 우체통은 매월 300여 통씩 여섯 달 만에 벌써 2천여 통의 편지가 쌓였다. 내용도 천차만별이다. 이메일이나 문자로는 전할 수 없는 프러포즈 이야기와 로또 1등 당첨을 바라는 소원형, 부모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효자'효녀형, 1년 내에 취직을 바라는 청년 실업자들의 간절한 사연 등이 주류를 이룬다고 현장 관계자가 귀띔했다.

한편, 배달 방식은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 1년 뒤의 날짜에 중구청이 편지를 우체국에 전달해 받는 사람 주소로 보내는 것이다. 또 편지지와 볼펜은 우체통 앞에 설치된 안내소에 비치돼 있으며 우푯값은 무료다.

24일 대전에서 이곳을 찾은 관광객 권대성(53) 씨는 "1년 뒤 결혼기념일에 맞춰 아내에게 쓰는 편지"라며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평생 당신 곁을 지켜줄게"라고 깜짝 이벤트 카드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김성진 중구청 골목문화계 주무관은 "사랑과 추억이 있는 사연을 엽서에 담아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마운 사람에게 따뜻함을 전해보세요"라며 "1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리움과 설렘이 더해져 더 큰 추억과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사진설명

우편물이 1년 후에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 이 대구지역에 처음으로 생겼다. 28일 오후 중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 옆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에 설치된 느림보 우체통 앞에서 부산에서 온 관광객들이 남편과 자녀들에게 쓴 편지와 엽서 등을 부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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