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바라보는 고요한 터전, 우뚝이 솟아 있는 우리 학교!"
28일 오후 2시 30분쯤 대구 중구 봉산동 대구초등학교 대강당. 흰머리에 깊은 주름의 어르신 17명이 교가를 불렀다. 후배인 재학생들도 따라 입을 모았다. 재학생들은 학년별 장기자랑을 했고 졸업생들은 박수를 치며 흐뭇한 표정의 눈으로 몸짓 하나하나를 담았다. 만남이 끝난 뒤 4~6학년생 200여 명은 큰 박수로 나이 지긋한 선배들을 배웅했다.
1953년 까까머리의 대구초등학교 6학년 9반 졸업생(41회)들이 백발이 돼 교정을 다시 찾았다. 25년 동안 반창회를 이어온 이들은 졸업 60주년을 맞아 어린 후배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70살이 넘은 초등학교 한 반 친구들이 졸업 인원 중 절반가량이 참여하는 반창회를 꾸준히 열어 온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들 졸업생은 유년시절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을 체험했고, 청'장년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는 등 한국 현대사의 한가운데서 평생을 살아온 뒤 다시 동심(童心)을 찾아 돌아온 것이다.
◆동심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대구초교 6학년 9반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한 건 1988년부터였다. 동심을 함께 보낸 벗에 대한 애틋함이 뭉치는 계기가 됐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대구 한 방송사에 근무하던 김덕(73'달구벌포럼 상임대표) 씨는 중계방송을 위해 서울에서 머물렀다. 당시 중'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다가 우연히 대구초교 6학년 반 친구를 4명이나 만났다. 김 씨는 "꼬마 때 친구들을 보니 스스럼없고 무척 반가웠다"며 "헤어지기가 아쉬워 계속 만나자고 약속했고 직접 초등학교를 찾아가 반 명부를 구해 일일이 연락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초대 반창회장은 김두희(73'전 검찰총장'법무부장관) 씨가 맡았다. 이후 매월 첫째 주 월요일에 서울과 대구에서 각자 모였고, 1년에 두 번은 모두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1953년 졸업할 당시 6학년 9반 학생은 58명이고, 그 중 1988년부터 모임에 참여한 사람은 31명이었다. 그렇게 25년이 흘러 올해로 졸업 60주년을 맞은 것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제외하고 현재 반창회 인원은 28명.
현재 반창회장인 이형기(73'전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씨는 "권력과 부, 명예를 가지더라도 어릴 적 동심에 대한 동경은 차마 떨칠 수가 없는 것"이라며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격의 없이 어울리던 코흘리개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은 애틋하다"고 말했다.
◆어려울수록 공부에서 희망을 찾아
졸업생들은 초등학생 시절 전쟁을 겪으며 힘들게 공부했지만 희망을 품고 각자의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었다. 한국전쟁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어났고, 대구까지 밀려 내려온 군인들에게 교실과 운동장을 양보해야 했다. 형편이 넉넉했던 친구의 집 마당 감나무에 칠판을 걸고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서 공부를 했다. 이집저집 떠돌아다녔고, 공책과 연필도 변변찮았다. 5, 6학년 땐 신천 변에 임시 천막 교사를 지어 학업을 이어나갔다.
안종원(73'전 중앙종합금융 사장'부회장) 씨는 "담임선생님은 앞으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것이라며 격려를 해주었고, 이에 제대로 된 교실 없이 강가 천막에서 공부했지만 언제나 희망을 품었다"며 "58명의 한 반 졸업생 중 서울대에 진학한 수가 6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박우철(73'경북대 생명과학대학 명예교수) 씨는 "반 친구들은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 대학교수, 언론인, 기업인 등 저마다 위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당시 이들에게 꿈을 준 김진동 담임선생은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인 김옥숙 여사의 큰오빠이자, 김익동 전 경북대 총장과 김복동 전 동구 갑 국회의원의 형이기도 하다.
이날 60년 전 졸업한 선배를 만난 6학년 김규현(13) 군은 "선배님들이 사회에서 걸어온 길을 후배로서 본받고 싶다"고 했다. 신경화 대구초등학교장은 "이번 방문은 흰 머리의 졸업생들에게 다시 한 번 어린 시절을 되새기고, 어린 재학생들에겐 107년 역사를 지닌 대구초교에 훌륭한 선배가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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