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나주역 사건' 주역 박준채

1929년 오늘, 광주를 떠난 통학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린 일본인 남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하자, 여학생의 사촌 동생 박준채(朴準埰)가 항의하면서 조선과 일본 학생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학생 간의 패싸움으로 번진 이 사건은 결국 나흘 뒤인 11월 3일 광주에서 학생들의 시위로 번졌다. 이날 시위는 전국 194개교에서 5천400여 명의 학생이 참가, 3'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 운동으로 발전했다.

애국지사 박준채는 나주역 사건으로 광주고보에서 퇴학당한 뒤 3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광주로 돌아와 1960년대 초부터 조선대 교수로 재직, 법정대학장과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1년 87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11월 3일'의 뜨거웠던 가슴을 항상 간직했던 그는 1980년 조선대 교수들의 시국양심 선언에도 관여하는 등 항상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신념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항일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1988년)과 건국훈장 애족장(1990년)을 받았다.

1953년 '학생의 날'로 제정된 11월 3일은 유신정권 때인 74년 폐지됐다가 84년 부활한 후 2006년 11월 국가기념일인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제정됐다. 하지만 '학생의 날'은 그날의 뜨거움은 사라진 채 달력 속에서만 남아 있는 기념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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