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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너무'가 너무 많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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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무서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습관은 한 번 굳어지면 웬만해선 바꾸기가 어렵다. 심지어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도 끝내 고치지 못하는 것이 습관이 아닐까 싶다. 흡연이 폐암을 유발하는 근본원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애연가들은 그 맛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지 못하고, 도박이 패가망신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노름꾼들은 그 짜릿한 쾌감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한다. 습관이란 이렇게 찰거머리처럼 독하며 끈질긴 것이다.

언어 사용 습관도 마찬가지인가 한다. 흡연과 도박 같은 것들보다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가 않다. 그만큼 한번 길들여진 언어 습관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역마다 말씨가 다르듯 사람마다 나름의 독특한 언어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매스컴의 발달로 요즈음은 이 언어 습관도 집단화, 광역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바람직하지 못한 언어 습관임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즐겨 쓰면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길들어 버린다.

'너무'라는 부사의 무분별한 사용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요새 사람들은 아무 데나 이 '너무'를 갖다 붙이기를 좋아한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너무 좋다' '너무 잘됐다' '너무 예쁘다' '너무 괜찮다'……, 이런 식의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너무'는 반드시 부정어와 호응해야 하는 말이어서 긍정적인 표현에서는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단어이다. 따라서 '너무 나쁘다' '너무 안됐다' '너무 못생겼다' '너무 문제가 많다', 이렇게 써야 올바른 표현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너무 좋다' 따위가 잘못된 것임을 모르고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어서 언어의 왜곡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 좋다' '너무 예쁘다'도 너무 잘못 쓰이고 있지만, 심지어는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너무너무 좋다' '너무너무 예쁘다'까지 유행하는 판이다. 누구는 부정과 부정이 결합하면 강한 긍정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을 해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저 한번 웃어 보자는 뜻으로 하는 소리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으리라.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이처럼 '너무 좋다'가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으니, 그 반대개념인 '참 나쁘다' '아주 나쁘다'도 똑같이 많이 쓰여야 이치상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참 나쁘다' '아주 나쁘다'가 아닌 '너무 나쁘다'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되어 '너무'가 이렇게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그 연유를 모르겠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참' '아주' '매우' '대단히' 같은 단어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긍정의 어휘들을 써야 할 자리에까지 모조리 부정의 어휘인 '너무' 일색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 어휘의 다양성 면으로 볼 때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밀린다왕문경'에 보면 모르고 짓는 죄가 알고 짓는 죄보다 더 크다는 가르침이 있다. 이 구절을 두고 사람들은 퍽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통상적인 도덕 관념상 경전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모르고 짓는 죄보다 알고 짓는 죄를 더 엄하게 다스리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였을 때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하면 더 엄하게 처벌하고 술김에 그랬다고 하면 훨씬 관대하게 다스리는 경우를 흔히 본다. 하지만 경전은 용광로에서 벌겋게 단 쇠를 모르고 덥석 쥐게 되면, 그 위험성을 알고 쥐었을 때보다 상처가 훨씬 깊어진다는 비유를 들어 알고 짓는 죄보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는 가르침을 역설하고 있다.

굳이 죄까지야 언감생심이겠지마는, 그래도 이처럼 모르고 쓰는 잘못된 언어 습관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언어 파괴 현상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말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으니 적이 염려스럽다.

지금은 '너무'가 너무 많은 세상이다.

곽흥렬 수필가·계간 '문장'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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