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도청(盜聽)이 희대의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인 7천만 건의 통화를 도청했다. 세계 35개 국가 정상의 전화도 엿들었다. 스페인의 6천만 건 전화통화 도청까지 도마에 새롭게 올랐다. 어디까지 도청이 이뤄졌는지 고구마 줄기같이 줄줄이다. 백악관이 연일 사과와 유감 표명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도청당했을까
국회 국정감사도 도청이 이슈였다.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의 외교부 국감에서 윤병세 장관은 의원들에게 혼이 났다. 우리 측 도청 사실 확인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질타였다. '농아 외교' '망신 외교'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무소속 박주선 의원은 "(미국의 도청에 대해)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요청하라. 한국 외교는 미국한테는 신뢰외교가 아니라 말도 못 하는 농아 외교이자 외교주권 포기한 망신 외교가 됐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우리나라가 치욕당한 것"이라고 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미국으로부터 도청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 프랑스, 브라질 정상도 미국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저도 제1야당 대표로서 도청을 당하는 것 아닌지 (미국 정부에)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윤 장관은 "(미국이) 정보사항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않는) NCND와 유사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희가 계속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해명해 저자세라는 지적을 받았다.
▶도청에 취약한 안보 당국
정부는 도청 방지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했는데 국방부 건물과 합참, 육군 등이 도청 방지 장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군 지휘부가 지난해 2월 도청 방지 보안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는데 한쪽 귀로 흘려들은 것이다. 도청 방지 업무를 책임질 총괄부서나 설치 규정이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안 의원은 "국방부 장관실에 도청 방지 장비가 없는 상황인데도 이를 해결할 부서도 없고, 설치 계획도 없는 건 심각한 문제 아니냐"고 했다.
각종 군사기밀과 고급정보가 오픈된 상태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도청 방지 의지도 없나
한국 재외 공관의 도청 방지 장비 설치율은 20%에 머무르고 있다. 도청 보안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외교부의 올해 도청 방지 장비 설치 예산은 9천만원에 불과하다.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받은 '재외공관별 첨단 도청 방지 시설 설치 및 예산 현황'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전체 161곳의 재외 공관(분소'분관 제외) 중 레이저 도청 방지 시스템(대화 중 발생하는 진동을 외부에서 창문 등을 통해 레이저로 도청하는 것을 방지)은 39곳(설치율 24.2%)에만 설치됐다. 전자파 차폐 시스템(컴퓨터 모니터나 본체, 케이블 등에서 누설된 전자파에 의해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은 32곳에서만 운용되고 있다. 전체의 20%도 안 된다.
올해 외교부의 전체 보안 예산 20억5천200만원 가운데 도청 방지 장비 설치 예산 9천만원은 4.3% 수준이다. 보안장치 하나가 400만∼500만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20대 정도밖에 살 수 없다.
▶도청을 어떻게 하기에
과거에 도청은 휴대전화에서 기지국으로 가는 통화내용을 무선신호로 추출해 음성 정보로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도청 수법은 크게 발전했다. 최근에는 전 세계 통신 정보의 80%가 오가는 해저 광케이블을 통째로 훑는다. 인터넷 검색, 이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정보도 다 빼낼 수 있다. 바다뿐만 아니다. 하늘에는 적외선 카메라, 비디오 카메라가 장착된 위성과 무인기로 엿듣고 있다.
김대중정부 땐 국가정보원이 야당 정치인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도'감청한 사건이 있었다. 2002년 당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폭로하면서 대선용 폭로로 여겨졌다. 앞서 2000년에는 '권노갑 퇴진'을 밀어붙였던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통화 내용이 도청됐다는 의혹이 있었다. 기자들이 이슈 선상에 있는 인사들의 집 앞에서 귀를 대고 엿듣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들 '도청 기자(?)'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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