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내각이 지난달 25일 특정비밀보호법안을 각의 결정하여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은 방위, 외교, 테러 방지 등 국가 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를 행정기관의 장이 비밀로 지정하고, 이를 누설하거나 누설을 부추긴 자를 최고 10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비밀 지정은 5년마다 연장이 가능하고 내각이 인정하면 30년 이상 또는 영원히 비밀로 할 수도 있다. 비밀보호법 그 자체는 일본의 국내 문제다. 그러나 비밀보호법은 외교 안보 정책의 사령탑으로 새로 설치될 국가안전보장회의와 일체이며, 내년 봄에 추진될 예정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9조 해석 변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국민 여론이 정부의 정책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아베 내각이 법안을 의결하기에 앞서 지난 9월 국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퍼블릭 코멘트를 실시한 결과는 찬성 17%, 반대 77%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비밀보호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국회의 다수를 이용하여 힘으로 이를 통과시킬 작정이다.
비밀보호법은 무엇이 비밀인지 그 자체를 비밀로 하고 있고, 정부와 관료들이 자의적으로 비밀 지정을 하며 이의 제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민주화 이전의 한국의 뼈아픈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정보 공개가 매우 뒤처진 나라이다. 예를 들면 미국과의 핵무기 반입 밀약은 반세기 이상 자민당 정부가 은폐해 왔고, 그것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른바 비핵 3원칙은 당초부터 실체가 없었던 것이다.
외교 안보 정책에 영향을 미칠 비밀보호법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의 해석 변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8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에 찬성하는 사람이 27%, 반대하는 사람이 59%였다. 그래도 일본 정부는 이를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왜 문제인가. 첫째, 근대 이래의 일본의 경험을 되돌아보자. 일본은 자위권이란 명목으로 주변국 침략을 자행해 왔다. 둘째, 일본이 행사하려는 군사력의 범위와 대상에는 한반도와 대만해협, 동중국해까지 포함하고 있다. 셋째, 전후 세계에서 미국은 대외적으로 무력행사를 제일 많이 사용했으며, 그 가운데에는 '침략'적 성격의 것도 적지 않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100% 이러한 미국과의 관계이다.
넷째, 일본 헌법 전문(前文)에는 정부의 행위로 인해 다시 전쟁의 참화가 야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구절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원칙으로 유명하고도 훌륭한 제9조의 교전권 포기와 전력 불보유가 있다. 일본 헌법 제9조는 과거 일본이 저지른 그릇된 전쟁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국제 공약인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은 자가 자위권이라는 명목으로 무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이중으로 모순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오직 미일 동맹에 매달리려는 일본의 진의를 드러낸 것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언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평화헌법에 기초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공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필자도 이에 찬성한다. 그런데 지난달 2일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에서 한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 조치를 포함한 전략문서에 서명했고, 또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연기하도록 요청했다. 그 다음 날 미일 외교 국방 각료회의에서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숨어 있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미국과 동맹 관계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동맹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을 정점으로 한국과 일본은 간접적인 동맹 즉 유사(quasi) 동맹 관계에 있다. 한국의 대북 억지 전략은 미국과 공동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을 매개로 한반도에 미일 동맹의 군사력이 발동될 수 있다. 한반도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계속 행사하면 더욱 그렇다. 가령 한국이 환영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군사력이 한반도에 미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바로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점을 한국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히로시마 시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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