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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편지] 나는 왜 죽음의 여의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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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마음먹고 준비한 검정색 원피스가 말썽이었다. 검정색이 세련되고 단정해 보이지만 호스피스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방송국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옷을 세 번이나 갈아입었지만 마뜩잖아 처음 검정색 원피스에 파란 스카프를 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담당 PD는 "시청자들이 부담스러우니까 죽음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하지는 마세요"라고 했다. 죽음을 빼면 딱히 할 말도 없는데…. 어쩌다가 나는 옷 입는 것부터 말하는 것까지 불편함을 주는 '죽음'이란 것과 뒤섞이게 됐을까?

"그때 남편을 큰 병원으로 옮겼더라면 좀 더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지금도 그것이 후회스러워요. 그래도 통증없이 편안히 떠나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해요." 명호 씨 부인은 남편이 떠난 한 달쯤 뒤에 찾아와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누구를 원망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왠지 섭섭했다. 47세 명호 씨는 호흡곤란이 심한 말기 폐암환자였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올 때부터 양쪽 폐가 다 망가져 있었고 물에 푹 잠긴 것처럼 숨이 찼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기침과 호흡곤란이 점차 좋아져 가까운 곳에 휠체어를 타고 산책다닐 정도가 됐다. 산소호스를 쓰고 노래방교실에서 부인의 손을 꼭 잡고 노래도 불렀다. 가족들은 모두 이곳으로 잘 옮겼다고 하면서 주치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명호 씨가 입맛을 되찾자 가족들은 환자가 평소에 즐겨 먹던 생선회를 사줘야할지 고민했다. 나는 백혈구 수치가 정상이어서 먹어도 된다고 했다. 항암치료 중이거나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 환자는 날것을 먹으면 세균감염 때문에 위험하다. 그러나 명호 씨 큰누나는 식중독 때문에 찬바람이 불면 먹게 하자고 반대했다. 나는 대놓고 "명호 씨가 찬바람 불 때까지 살 수가 없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을 못 먹게 해서 떠나보내면 명호 씨 부인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여러 의학적 근거를 들어 '생선회를 꼭 드시게 하라'는 편지를 써 놓고 퇴근했다. 그렇게 좋은 나날들이 딱 3주였다.

어느 날 명호 씨는 예상대로 갑작스런 호흡 곤란이 왔고 이틀을 못 채우고 황망히 떠났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호스피스팀이 만들어준 편안했던 짧은 추억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명호 씨 가족은 주치의를 원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죽음의 여의사인가?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거나 성격이 원래 구슬프고 우울해서라고 쓰고 싶지는 않다. 슬프게도 내 환자들은 모두 명호 씨처럼 사망으로 퇴원했다. 마지막에 하는 임종 돌봄은 남녀노소나 암의 종류와 상관없이 거의 똑같다. 이 일을 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도 죽음 직전까지는 살아있음을 알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살아있는 생명을 치료하고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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