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야 온 겁니까?"
지난 4월 어느 날 가슴 쪽 속옷에 묻어나온 피를 보고 바로 병원에 달려간 장승희(35'여'대구 수성구 수성동) 씨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너무 늦게 발견했다"며 "이 상태에서 모유 수유까지 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제야 장 씨는 자신의 가슴 상태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4년 전에도 유방암에 걸려 부분절제 수술을 받은 왼쪽 가슴이 부어 있는 것도 모자라 딱딱했던 것이다. 장 씨는 "제대로 한번 내 가슴을 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첫 번째 아픔
장 씨는 서울의 한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지난 2009년 첫 번째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열심히 일하며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행복한 앞날을 꿈꿨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병원에서는 '유방 조직에 혹이 하나 있어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수술이 끝나고 의사가 '혹에 암세포가 발견돼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나서 독한 항암 약들이 제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6개월 동안 암 치료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은 심각했다. 치아가 흔들려 어금니가 빠지고 발톱이 빠질 정도였다. 장 씨는 1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은둔 생활을 했다. 600만원이나 됐던 병원비를 내려고 살던 자취방의 보증금도 빼내 써야 했다.
병 치료에 너무 지쳐버린 장 씨는 결국 병원에서 꼭 받으라고 했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에는 가진 돈이 없었어요. 그때 방사선 치료를 안 받은 게 후회가 돼요. 방사선 치료만 받았어도 지금 유방암이 재발해 고통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요."
◆행복한 날이 올 줄 알았는데…
장 씨는 2년 전 결혼해 남편과 대구로 내려왔다. 남편은 장 씨가 암 치료로 사경을 헤맬 때 장 씨 옆을 계속 지켜왔다. 결혼을 승낙받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시부모님의 반대를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몸이 건강하지 않은 며느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장 씨와 남편은 계속 시부모님을 설득했고 그러던 중 덜컥 아이가 장 씨의 배 속에 들어서 버렸다. 시부모님은 그제야 결혼을 승낙했다.
결혼 후 장 씨는 지난해 2월 아들 영진이를 낳았다. 영진이의 남다른 성장을 보면서 뿌듯해하던 장 씨는 올해 2월 영진이의 돌잔치를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돌잔치 하면서 시댁 식구들, 남편 친구들 등 합쳐서 30명 정도 왔었거든요. 영진이 첫 생일이라고 축하해주고 돌잡이 할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들 보면서 '이게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안 계셔서 가족의 정을 못 느꼈는데 그제야 가족의 정이란 걸 느꼈어요."
장 씨는 '남편과 10년만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자'고 결심했다. 적금도 들고 착실하게 준비한다면 10년 뒤에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즐겁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행복한 결심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유방암이 재발한 것이다. 모유 수유하면서 느꼈던 가슴의 고통을 그냥 참고 넘기는 바람에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도 장 씨의 병을 더 키웠다. 4년 전에는 1기였던 유방암이 현재는 3기 말에 이르렀다.
"결혼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는 이상이 없었거든요. 그때 영진이가 배 속에 들어왔고요. 그래서 '병도 다 나아서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어요."
◆"아이 때문에라도 살아야 해요"
장 씨는 5월 수술을 받고 10월 중순에 첫 번째 항암치료를 끝내고 퇴원했다. 4일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을 때 장 씨는 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심장도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심장 상태로는 방사선 치료도, 항암 치료도 무리라는 결과가 나왔다. 병원에서는 3개월간 지켜보고 심장 상태가 더 나아지면 그때 다시 항암 치료를 하자고 제안했다. 장 씨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석 달 동안 손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하더라고요. 의사 선생님 붙들고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기까지 했어요."
3개월 뒤에 심장 상태가 나아지면 다시 치료를 받을 수 있다지만 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첫 수술을 할 때는 적금을 해지하고 구청을 통해 긴급의료지원금을 받아 해결했는데 다음 치료는 더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3개월 후에 처방받을 항암 치료제는 한 번에 50만원이 넘는다. 건강보험에서 제외되는 약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한 달에 90만~120만원을 벌어온다. 하지만 장 씨의 병원비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남편은 낮에 건설 일용직 자리를 구하러 다니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시부모님 또한 1억원에 가까운 빚을 갚느라 며느리를 도와줄 여력이 없는 상태다. 장 씨는 이러한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도 일자리를 구하려고 생활정보지를 뒤적거릴 때가 많다. 장 씨는 "가만히 집에 있는 것보다 어떻게든 움직여서 돈을 벌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장 씨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아들 영진이다. 어릴 때 부모를 잃은 장 씨는 엄마 없는 서러움을 아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힘든 항암치료를 견딘 것도 다 아들 영진이 때문이다. 영진이 때문에 4년 전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더 잘 견딜 수 있었다.
"영진이 갖고 나서 초음파 검사할 때 가슴도 같이 초음파검사를 받았다면 암을 빨리 발견했겠죠. 하지만 그때 치료에 들어갔다면 지금처럼 건강한 영진이는 못 봤을 거예요. 차라리 늦게 발견한 걸 다행으로 여겨요. 영진이가 내게 가져다준 선물이 많아서, 그래서 더 살고 싶어요. 영진이에게는 내가 겪은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요. 무조건 살아야 해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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