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응답하는 '1990' 대세로 떠오른 추억 마케팅

드세진 문화시장 '복고 신드롬'

1990년대를 추억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선보이고 있다. 케이블방송
1990년대를 추억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선보이고 있다. 케이블방송 '팔도방랑밴드'
영화 터미네이터
영화 터미네이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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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농구대잔치, 허리에 삐삐를 차고 거리를 활보하는 X세대, 길게 줄이 늘어선 공중전화….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가 공존했던 1990년대. 한때 젊은이들을 설레게 했던 문화와 풍경이 부활하고 있다. 안방극장을 비롯해 음악, 영화계 등 대중문화 전반에서 1990년대를 추억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선보이고 있고 호응을 얻고 있다. 삐삐번호(012)도 돌아왔고 구수한 사투리도 소환당했다.

◆소환하라 '1990'

1990년대의 대중문화가 본격 소환됐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가 공존한데다 문화적 기반이 가장 풍성했던 시대인 만큼 드라마'영화'음악 등의 분야에서 '1990년대 소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문화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라 그만큼 재해석의 여지가 많고 문화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안방극장에서는 지난해 '응답하라 1997'에 이어 올해는 '응답하라 1994'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18일 첫 방송된 이후 평균 4%대의 시청률 고공행진(케이블 시청률 1위)을 벌이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대중문화계 키워드였던 서태지와 아이들, 농구대잔치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지방 학생들의 서울 상경기를 접목시키면서 인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1990년대 향수를 자극했던 영화판에도 '과거'가 부활하고 있다. '마이 묵었다 아이가'란 대사를 전국적으로 히트시키며 한국영화의 새 장을 열었던 영화 '친구'가 돌아온다. 영화 '친구2'는 수감됐다 17년 만에 출소한 준석(유오성)의 이야기로 14일 개봉한다. 곽경택 감독과 배우 유오성이 다시 뭉쳤다. 부산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한국전쟁 이후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서 한석규'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가 6일 재개봉했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는 리메이크 버전으로 제작에 들어갔다.

1990년대 중후반 신드롬을 일으켰던 외국 영화들도 재개봉되고 있다. '아일 비 백'(I'll be back)이란 명대사로 끝을 맺었던 '터미네이터2'(1991)가 14일 대사처럼 돌아왔다. 올 초에는 1995년 국내 개봉 당시 프랑스 영화로는 최초로 1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레옹'도 무삭제로 재개봉된 바 있다. 또 '니키타'(1990)가 지난달 31일 재개봉된 데 이어 '동사서독'(1994)은 재편집 버전인 '동사서독 리덕스'로 이달 28일부터 관객들과 만난다. 이 밖에 '노킹 온 더 헤븐스 도어'(1998), '흑협'(1996) 등이 재개봉됐고 좀 오래됐지만 '정무문'(1973)도 40여 년 만에 재개봉했다.

가요계는 19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들의 귀환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월 국민가수 조용필이 '바운스'라는 노래를 히트시키며 컴백했다. 이어 '발라드의 황제'로 불리는 신승훈이 4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임창정도 10년 만에 가수로 컴백해 활동 중이다. 이적, 유희열 등도 신곡 발표를 앞두고 있다. 앞서 신인 가수 김예림은 1990년대 감수성을 담은 음반으로 신예답지 않은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 TV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나와 1990년대 패션으로 인기를 끌었던 김민종 역시 리메이크 노래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대구경북연구원 오동욱 사회문화연구팀장은 "대중문화계 전반에 '1990년대의 소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당시 청소년기와 대학시절을 보냈던 현재의 30, 40대가 구매력을 갖춘 주요 문화 소비계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서적으로 풍부했을 시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적극적으로 소비되면서 각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투리에서 신기술까지

안방극장이나 스크린 등에서 한동안 서울 표준말에 기죽었던 사투리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향수'나 '복고'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투리가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다. 이전까지 사투리는 맛깔 나게 쓰는 정도의 유행어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 지역 고유문화를 장착해 방송'영화계 장악에 나섰다.

'응답하라 1994'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등장인물들이 유창한 사투리로 각 지역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예를 들어 1994년 당시 경남 삼천포에는 KFC가 없었고, 허영만과 백일섭이 전남 여수 출신이라는 등 다른 지역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사실들이 언급된다.

이달 말 정규 편성되는 '팔도방랑밴드'는 윤종신, 김흥국 등 5명의 가수가 방방곡곡을 돌며 주민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팔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이 기획 의도이다.

지역 뮤지컬계에서도 대구 사투리와 정서를 실감 나게 구현하는 뮤지컬이 준비되고 있다. 뮤지컬 배우 이민주 씨는 "뮤지컬의 특성상 표준말이 많이 사용됐지만 최근 들어 대구에서 지역의 감성을 담은 뮤지컬을 만들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공연 인력과 자본이 서울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지역의 감성이 녹아 있는 창작뮤지컬이 만들어질 경우 서울로 진출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패션'신발업계에도 복고풍이 불고 있다.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아이템이 새로운 아이템 못지않은 인기를 모으며 복고를 콘셉트로 한 제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에덴양품 최영수 대표는 "불황이 계속되면서 소비자가 새 아이템보다는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복고 아이템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며 뽐냈던 삐삐(무선호출기). 휴대폰 위세에 눌렸던 삐삐는 사라지고 있지만, 이 삐삐가 사용했던 번호(012)는 부활했다. 최근 정부가 '이동통신 3사가 내년 1월부터 사물 인터넷에 삐삐가 사용했던 012 번호를 부여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사물 인터넷은 일상의 사물에 유무선 인터넷을 연결해 각 물체 간 정보를 교환하는 것. 현재 택시의 무선결제나 버스 위치 정보와 같이 사물에 삐삐 번호를 부여해 사물끼리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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