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분들께서 대뜸 필자에게 던진 말이다.

지난달 26일, 파독 광부'간호사 일행이 구미를 방문했다. 국민소득 70달러, 너무나도 배고팠던 시절 대한민국 경제의 밑거름을 만들기 위해 눈물로 고국을 떠났던 그분들이 필자에게 던진 첫 인사는 "고맙습니다" 였다. 두 손 맞잡고 울었다. 체면도 체통도 잊었다. 그분들이 건넨 "고맙다"는 인사는 필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 감사하고 눈물이 났다. 그분들의 인사는 변화된 조국, 세계 경제 대국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조국에 대한 인사였다.

공교롭게 그날은 대한민국을 배고픔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신 고 박정희 대통령의 34주기 추도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그분들은 조국과 가족을 떠나 멀고 먼 독일로 갔다. 당시 독일은 2차대전 이후 노동력 감소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 덕분에 노동력이 부족했다. 특히 광부와 간병인 같은 힘든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인력의 절대적 부족을 외국인 노동자들을 통해 채우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차관을 빌려오는 조건으로 14년간 광부 7천940여 명, 간호사 1만 2천여 명 총 2만여 명을 파견했었다.

그런 분들이 조국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애초 지원하기로 한 단체가 계획을 변경'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모국을 방문하기로 한 파독 광부'간호사 224명이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언론 매체로부터 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구미로 모셨다.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으로 발돋움한 구미를 보여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당신들의 노력이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드리고 싶었다. 산업단지를 둘러보고 금오산의 단풍을 보여 드렸다. 새로이 조성되는 5공단을 안내 드렸고, 경제영토 1천200만 평, 무역수지흑자 226억달러, 수출 344억달러, 생산 75조원, 근로자 11만 명, 1인당 GRDP 4만3천달러의 구미를 하나하나 설명 드렸다.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어린애처럼 기뻐하셨다. 당신들이 먼 독일 땅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만큼 큰 선물은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조금이나마 그간의 시름과 피로를 풀어 드리기 위해 사물놀이, 해금독주, 태평무 등 전통문화 공연으로 심신을 위로해 드렸고, 구미시에 거주하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함께 초청하여 감격스런 재회의 장도 마련해 드렸다. 연이은 흥으로 이내 노래자랑 한마당이 열렸다. 필자에게도 노래 요청을 하셨다. 두 곡을 멋들어지게 불러 드렸다. 뜨거운 박수를 치며 '광부의 노래'를 합창할 때 우린 모두 영락없는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이주생활에서의 고단함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듯 보였다.

한국을 떠날 때 기억하고 있던 '모래펄 구미'의 변화된 모습에 많이 놀라워하셨고, 민간 외교관이 되어 대한민국과 구미를 알리겠다는 말씀 또한 잊지 않으셨다. 최근 우리 시가 집중하고 있는 독일과의 경제교류를 설명드리자, 독일에서 2세가 운영하고 있는 전자의료기기 사업의 확장에 필요한 상세 자료도 요청하셨다. 구미에서 편안한 1박을 보낸 뒤, 박정희 체육관에서 진행된 환송식에는 새마을단체 회원 100여 명이 준비한 태극기를 휘날리며 떠나는 분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다.

필자는 몇 년 전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 백영훈 박사님께 우리 시 직원들의 특강을 부탁해 함께 경청한 적이 있다. 한민족 특유의 성실성을 인정받고자 묵묵히 노력하셨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64년 최초의 국빈 자격으로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께 태극기를 흔들며 진심으로 환영해준 사람들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독일 국민들이었음을 말이다.

기억해야 한다. 바로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산업전사였음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유진/구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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