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은 양반의 위선과 잘못된 처신을 비판한 소설이다. 연암은 엄 행수라는 인물을 통해 사대부의 허위의식과 편견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한다. 엄 행수는 동네 똥거름을 쳐내는 엄씨 성을 가진 늙은이로 이덕무가 예덕 선생으로 부르는 사람이다.
소설에 자목이 스승 이덕무에게 "벗이 소중하다고 가르치면서도 선생님은 왜 천한 이와 벗하느냐"며 "부끄러워 견디기 힘드니 문하를 떠나겠다"며 투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이덕무는 "대체 장사치의 벗은 잇속으로 사귀고 체면을 차리는 양반네의 벗은 아첨으로 사귀네. 잇속으로는 지속되기 어렵고 아첨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네"라고 타이른다. 그를 천하다고 하나 '더러운 막일로 높은 덕을 가리고서 세상을 숨어 사는 분'이라며 그를 예덕 선생이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덕선생전은 단지 인간 위선을 꼬집는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다. 선입견 없이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도 담고 있다. 욕심 없이 바르게 살아가는 한 늙은이를 통해 도의와 신뢰, 환경에 굴하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저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에서 박정희'김대중'전두환 등에 대해 재평가한 대목이 흥미롭다. 그는 1980년 마오쩌둥 격하 운동을 누른 덩샤오핑의 '공칠과삼'(功七過三) 평가 사례를 소개하면서 역대 대통령을 새롭게 보자고 제안했다. 안 지사는 "박 대통령은 10월 유신으로 헌법적 정당성을 상실한 정치인"이라며 "경제 공적을 인정해도 공칠과삼을 넘지 않는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공칠과삼은 그간 보수의 프레임이었다. 진보 좌파 진영은 '박정희에 대한 공세를 타개하려는 타협 논리'라고 공박해왔다. 이런 프레임을 친노 인사가 긍정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한 방편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편협하고 궁색한 시각이다.
'군주는 언제나 성명(聖明)하고, 장관은 영명(英明)하며, 윗사람은 무조건 고명(高明)하다'는 공식을 흔히 삼명(三明)주의라고 한다. 전근대사회의 관계와 범절의 기제였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똥거름을 져 나르는 엄 행수와 예덕 선생은 별개의 인물이 되고 만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어려운 것은 우리에게 한 면만 보기 쉬운 허물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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