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동양문화권에서 불멸의 역사 고전 '사기'(史記)를 저술한 인물이다. 이 책은 물론 역사서이므로 사마천의 이야기도 역사 영역에서 논해야 하겠지만, 한나라 시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또 사마천이 유교가 안고 있는 중요한 철학적 화두를 제기하고 있어 소개하려 한다. 한나라 때의 유교는 국가이념으로 지식인의 가치관으로서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마천은 이러한 유교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사기'의 '열전'은 여러 사람의 전기를 모은 것인데, '백이전'(伯夷傳)부터 시작한다. '백이'는 '백이'숙제'(중국 주나라의 전설적인 형제 성인)로 잘 알려진 인물로 은나라의 제후 고죽군의 아들로서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치려 하자 말리다가 무왕이 듣지 않자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은 사람이다. 일찍이 공자가 평하기를 "인(仁)을 찾아서 인을 얻었으니 무엇을 원망했겠는가"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사마천은 백이'숙제가 죽을 때 남긴 시를 증거로 성인 군주가 없는 이 세상과 자기의 신세를 한탄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세상에는 '천도(天道)는 반드시 착한 사람의 편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백이' 같은 착한 사람이 왜 불행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백이'만이 아니다. 공자의 제자 70명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던 '안회'(顔回)는 끼니조차 굶을 정도로 빈궁한 생활을 하다가 일찍 세상을 떴다. 이와 반대로 '도척'과 같은 이는 부하를 거느리고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은 천수를 누리며 살았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니 "하늘의 섭리는 과연 올바른 것인가? 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라고 한다. '서경'(書經)에 "천도는 선에 복을 주고 악에 화를 내린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도덕을 지키는 자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지만, 사마천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공자는 '백이'를 인(仁)이라는 도덕을 얻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했다고 하지만, 사마천은 유교의 이러한 행복론에 만족할 수 없었다.
원래 유교는 인생을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떳떳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했을 뿐, 세속적인 행복을 겨냥하지 않았다. 따라서 도덕적 삶에 수반되는 인생의 불행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별 대안을 제시한 것도 없다. 이는 사마천 자신이 궁형(宮刑)을 당한 비운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기는 하나 유교의 한계를 잘 지적한 것이다. 지식인은 그나마 정신적 행복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일반 백성들은 어처구니없는 불행이 닥쳤을 때 위로받을 데가 없었다. 이러한 유교 사회의 분위기는 그 후 불교가 들어오자 종교적으로 큰 관심을 가지게 했고, 특히 '삼세보응설'(三世報應說)에 깊이 매료됐다.
이동희/계명대 윤리학과 교수 dhl333@kmu.ac.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트럼프, 중동상황으로 조기 귀국"…한미정상회담 불발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