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삶이란 고정된 원(圓)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쎌 에메(Marcel Ayme)가 쓴 '난쟁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곡예단에서 인기가 있는 난쟁이는 서른다섯 살 된 어느 날 갑자기 키가 커지기 시작한다. 고열과 고통을 겪은 후 키가 175㎝의 미남으로 변한다.

"삶은 정말 아름다워요.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몰랐어요"라며 좋아한다. 서커스 단장은 그를 사촌이라 소개하고 난쟁이는 병이 나서 병원에 보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와 한 조가 돼 공연했던 키가 큰 동료가 눈물을 훔치며 "그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제일 점잖은 친구죠. 너무나 작아서 악의가 들어앉을 자리도 없었어요"라며 아쉬워하고, 공연이 끝나면 거리낌없이 무릎 위로 올라가 앉을 수 있었던 여자 곡마사도 난쟁이가 아프다는 말에 무척 상심해한다.

모든 서커스단 단원들이 좋은 친구를 잃었다고 탄식하지만 그에게는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난쟁일 때는 키가 큰 사람과 공연만 하면 관객들은 모두 포복절도할 웃음을 터트리며 열광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가 어떤 곡예를 해도 그들은 즐거워하지 않는다. "자네는 너무 정상적이라 관중을 휘어잡을 수가 없어"라는 말을 단장에게서 듣고 "끝났어. 이제 서커스단에 나를 위한 자리는 없어"라며 그곳을 떠난다.

20여 년 전 37세 환자가 혈중 유즙분비호르몬이 높아 그 억제제를 투여했으나 임신이 되지 않아 수술 받도록 보낸다는 의뢰를 산부인과에서 받았다. MRI 사진에는 아주 작은 종양이 뇌하수체에 있어서 수술로 완전 제거했다.

약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녀가 외래에 왔을 때였다. "교수님, 저 임신했어요. 산부인과에서 검사하니 틀림없는 임신이래요. 고마워요." 형광등 불빛에 그녀의 눈에서 물기가 반짝였다. 그리고 5, 6년이 지나서였다. 유치원생쯤 되는 나이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온 그녀가 진단서를 요구했다. "어디에 쓰실 건데요?"

"이혼하려고 법원에 내려고요. 애를 못 가지던 10여 년 동안 시댁에서 얼마나 구박을 받았는지 아세요? 저 애를 낳고나서부터는 말대꾸를 했더니 이번에는 얌전한 사람이 변했다고 또 구박을 합디다." "아니, 잘 사시라고 수술을 해서 애를 갖도록 해드렸는데…. 다시 생각해 보세요." 설득하고 납득시켰지만 안 되어 결국 진단서는 발부했다. 그 후 환자는 다시 오지 않았다.

난쟁이는 그렇게 원하던 늘씬한 미남의 남자가 되었으나 직장을 잃었고, 환자는 아이를 가졌으나 가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렀다. 삶이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 같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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