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여촌야도<與村野都>의 추억에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서로 약속이나 하듯이 시'군'자치구의 선거에서 장 및 의원 후보자의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겠노라고 국민들에게 공연히 소리 높여 언약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공직선거법의 개정은 아직 새누리당의 당론이 정해지지 않는 등의 이유로 2013년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려는 지금까지도 정치일정에 오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생활정치의 마당인 시'군'자치구의 선거에 정당이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데 찬동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여기저기서 제18대 대통령 선거 공약의 입법화를 촉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공직선거에 정당이 관여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공직선거와 정당의 사이를 억지로 떼려고 해도 실제로 완전히 떼어놓기 어렵다는 것은 우리의 지난 경험을 통해서도 익히 알 수 있다. 1991년부터 2002년 지방선거 때까지 시'군'자치구의 의원 선거에서 정당은 후보자를 공천할 수 없었지만 때와 곳에 따라서는 지역선거구의 국회의원 등이 후보자를 내밀하게 사실상 공천하는 내천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 모두가 주권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수많은 생각들을 크게 몇 갈래로 수렴하는 역할은 정당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정당정치를 구현하는 유력한 수단의 하나가 공직선거 후보자의 정당 공천제다. 그런데도 이를 없애자고 하는 데에는 지역에 따라 투표가 특정 정당의 후보자에게 지나치게 쏠리는 망국적인 투표행태를 생활 공동체의 선거에서는 좀 막아보자는 간절한 뜻이 담겨 있다.

영남에는 새누리당 호남에는 민주당과 같은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1987년의 제13대 대통령 선거와 1971년 이후 17년 만에 소선거구가 부활한 1988년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성장하고,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통합을 통해 지역에 뿌리를 박은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없지는 않았지만 거의 싹쓸이 수준의 오늘날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1971년 4월의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는 전라남도에서 유효투표의 34.4%를 얻었고 낙선한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는 부산시에서 득표율 43.6%를 기록했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공직선거의 투표행태는 여촌야도(與村野都)라는 말로 대표되고 있었다. 공직선거에서 여당은 시골에서 세고 야당은 도시에서 강하다는 뜻이다. 정수 131명을 뽑은 1967년 6월의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공화당은 101석을 얻어 전체적으로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서울에서는 14석 중 1석, 부산에서는 7석 중 2석을 얻는 데 그쳤다. 나머지 18석은 모두 신민당의 몫이었다. 이어 1971년 5월의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여당은 정수의 과반수를 점했지만 서울에서는 19석 중 1석, 부산에서는 8석 중 2석, 그리고 대구에서도 5석 중 1석밖에 얻지 못했다. 한 달 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를 열렬히 지지한 대구에서도 이때 민주공화당의 이만섭 이원만 이효상 박린 후보들은 신민당의 한병채 김정두 신진욱 조일환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러한 여촌야도는 박정희의 유신 정부가 1973년의 제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선거구를 종전의 소선거구에서 중선거구로 바꾼 배경이 되었다. 이로부터 극심한 여촌야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선거구에서 두 사람의 당선인을 배출하는 중선거구제로 인해 여당과 야당이 동반해서 당선되는 선거구가 많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투표의 결과를 왜곡해 주요 정당들이 누이 좋고 매부 좋게 국회 의석을 서로 나누어 가지게 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정당들이 이 선거구제를 통해 각지에 고루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역사적인 사실이다.

시'군'자치구 선거의 정당 공천제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시'도 선거의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말인데, 정치사회적인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효과적으로 좇기 위해서라도 내년 6월의 동시 지방선거에서 시'도의원 선거구를 소선거구에서 중선거구로 바꿀 수는 없을까?

강재호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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