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님, 그리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 소속 신부님들. 지난 22일 전주교구 시국 미사는 천주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충격과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갈등의 봉합과 치유에 앞장서야 할 사제들이 나라를 더 큰 갈등과 대립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은 "사제는 직접적으로 정치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올바른 정치는 주님의 정의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사제가 정치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올바른 개입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진실과 공정 위에 굳건히 서야 함은 물론 가장 시급하게 개입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정구사 신부님들의 언행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선 진실의 문제부터 따져봅시다. 박 신부는 "NLL(북방한계선)이 문제 있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NLL은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그었지만 북한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정됐습니다. 6'25 휴전협정에서 '소유한 대로 소유한다'는 원칙이 적용된 육상과 달리 해상의 일부 지역은 '전쟁 전 상황으로 복귀'라는 북한의 주장이 적용됐습니다. 그 결과 6'25 이전에 대한민국의 통제하에 있었지만 정전 협정 당시 북한이 차지하고 있던 옹진반도 인근의 기린도 선위도 등 38도선 이남의 도서들이 모두 북한에 양도됐습니다.
이에 북한은 NLL 획정에 오히려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한 중앙조선통신사는 1959년 '조선중앙년감'에 황해남도 남쪽 한계선을 NLL로 명기해놓았습니다. NLL을 인정한 것이지요. 이후 북한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1973년 '서해 사태'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트집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NLL이-전직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괴물'이 된 것입니다.
"서해북방한계선 지역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데 북한 함정이 와서 어뢰를 쏘고 갔다? 이해가 갑니까?"라는 발언도 그렇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것은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의 전문가들이 과학적 증거를 통해 밝혀낸 사실입니다. 이를 믿지 못하겠다면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신부님의 군사'과학 지식이 이들 전문가를 능가하는 경지에 오르기라도 했나요? 아니면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다"고 했던 헌법재판관 후보자처럼 못 봤으니 못 믿겠다는 것입니까? 그도 아니면 그 어떤 초월적 존재가 공식 조사 결과가 거짓이라고 알려주기라도 했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천안함 폭침 당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NLL 근처가 아니라 170㎞ 남쪽의 태안반도 인근 해상에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북한 동포의 고통에 대한 외면입니다. 박 신부는 북한이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정체(政體)"라고 했습니다. 그런 정체가 노동자와 농민 300만 명을 굶겨 죽인 사실은 잘 아시겠지요? 그러나 정구사 신부님들은 침묵했습니다. 부끄럽지 않나요? 박 신부는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칩시다. 그러나 북한에는 민주주의가 아예 없고 김씨 왕조의 폭압 통치는 유신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안전한 곳에서 안전하게 투쟁하는 신부님들을 보면서 히틀러에 반기를 들었던 '행동하는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삶이 떠오릅니다. 그는 히틀러의 박해가 시작되자 미국으로 망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독일 국민과 함께하기 위해 독일로 돌아온 뒤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가 발각돼 순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너른 마음에 참여해 위험한 순간이 닥칠 때 책임감을 갖고 거침없이 행동하고, 고통당하는 모든 이에게 진정한 자비를 보여주어야 한다. 무작정 기다리며 방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이 같은 용기와 진정한 자비가 더 시급히 필요한 곳이 북한이겠습니까? 남한이겠습니까? 정구사 신부님들은 본회퍼와 같은 삶을 살 용기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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