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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서양의 춤과 우리의 춤

서양의 춤과 우리 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서양 춤은 발을 주로 사용하지만 우리는 손이 '춤의 꽃'이다. 서양 춤은 발로 땅을 차면서 위로 솟구치지만, 우리 춤은 반대로 손으로 땅을 쓸어 담는다. 발레 같은 경우는 발로 땅을 콕콕 쑤시면서 상승하려고 움직이지만, 우리 춤은 몸을 아래로 굽히면서 대지를 끌어안는다. 서양 춤은 땅으로 분리되고 위로 초월하려고 하는 춤이라면 우리 춤은 하강하면서 땅과 일치하려는 춤사위가 곡선적이다. 춤에서 보이는 것처럼 서양은 자연과 분리되는 세계관이고 자연에 대해 아무래도 적대적이다. 우리는 감나무에 감을 다 따지 않고, 까치밥을 남겨줄 정도로 친생태적이다.

1967년에 발표된 린 화이트의 '생태위기의 역사적 뿌리'라는 논문은 서양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논문에서 생태위기의 역사적 뿌리를 특정 종교라고 지목하고 그 대안으로 그 종교를 대신할 종교를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프란치스코 영성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논문은 종교계에 파문을 던졌다. 1979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성 프란치스코가 생태운동의 주보 성인이 되었다.

린 화이트가 특정 종교를 생태위기의 주범이라고 지적한 이유는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을 확립하고 인간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가르친 그 종교가 가장 '인간 중심적인 종교'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린 화이트의 논문이 아니더라도 춤만 비교해 봐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서양의 문화적 질병은 이원론인데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하고, 초월한 신과 특별한 계약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연 세계를 부정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어떤 용도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에는 모든 식물은 그저 잡초일 따름이다"고 간주하고 자연은 개발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서구 사회에서 나타난 이 깊은 문화적 병리현상은 지구 전역에 전파되었고, 지구 어디에서든 이 행성을 황폐화하는 공격을 목격하게 되었다. 인간과 신의 관계나 인간 사이의 관계에 있지도 않고, 기본 논제는 인간과 지구와의 관계이다.

우리가 자연에서 소외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소외를 발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지구를 독성물질로 해마다 2억t씩 오염시킴으로써 수억 년, 수십억 년에 걸쳐 이룬 균형을 겨우 몇 십년 만에 교란시키고 있다.

꼭 10년 전에 이곳 영천 화북면 초등학교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우리 자녀들과 태어나지 않는 모든 종들의 세대를 위해 자연학교를 세웠다. 생태의 수준에서 교육을 통합하고 인간을 재형성하기 위해서 만든 학교이다. 가장 보수적이었던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평화를 이루려면 자연을 보호하라고 인류에게 간곡하게 요청했다. 우리가 직면한 행성 차원의 위기가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는 말이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산자연학교 교장 정홍규 신부 comomont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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