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우리 지역 문화를 드높이는 한 해

김병일/한국국학진흥원장

10여 년 전부터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구호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작년부터는 '문화융성,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했다. 둘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전자에는 문화가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척도이고, 따라서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라는 경제적 의미가 스며 있다. 반면에 후자에는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문화를 삶의 질을 높여주는 근본 요소로 여기는 시각이 들어 있다.

이 차이는 근래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문화'에 대한 적잖은 시각변화를 보여준다. 문화가 다른 가치 실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주목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시각은 우리 지역에서도 보편화되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12월 초에 있었던 대통령에 대한 경북도 도정 보고회가 세계문화유산 도시인 안동에서 열린 것이 한 예다. '문화융성, 행복한 대한민국'을 추구하는 국정 방향에 지역이 화답하는 모양새이다.

우리 지역의 문화적 저력은 깊고 넓어 그야말로 무진장이다.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불교문화와 조선 유학 본류 가운데 하나인 퇴계학,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성주신앙 같은 민속문화가 모두 여기가 본산이다. 이렇듯 우리 지역에는 전통문화의 3대 축인 불교문화와 유교문화, 민속문화가 고르게 발달하였고 잘 계승'보존되고 있다.

지역의 문화적 저력은 근래 들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선현들의 옛날 미담을 들려주어 인성이 바르게 자라도록 돕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올해는 1천600여 명가량의 할머니들이 전국 4천700여 개 유치원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펼치게 된다. 지난해 12월 20일에는 이를 자축하는 전국대회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렸다. 당시 대회에 참가한 이야기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는 문화로 행복한 대한민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충분히 상상케 해주었다. 전국 유치원 아이들과 할머니들을 감염시키고 있는 이 행복 바이러스의 진원지는 자랑스럽게도 5년 전 전통 스토리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우리 대구경북 지역에서 처음 선발된 30명의 이야기할머니들이다.

우리 지역은 또 전통문화 창작 소재의 메카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조상의 기록 자료에서 이야기를 발굴'보급하는 스토리텔링 소재 구축 사업이 문화 일선 콘텐츠 전문가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이야기 생산지인 지역의 전통문화 현장을 직접 답사하는 프로그램에도 줄을 이어 참가하고 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스무 차례에 걸쳐 모두 700여 명이 다녀갔다. 여기에는 영화감독과 시나리오작가, 방송제작자와 구성작가, 만화스토리작가 등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문화 현장의 '꾼'들이 망라되어 있어 지역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콘텐츠 제작의 앞날을 밝게 해준다.

전통문화의 정수인 선비 정신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을 다녀간 수련생들이 지난해 3만 5천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첫 수련을 시작한 2002년의 200여 명과 비교할 때 11년 동안 해마다 60% 이상의 놀라운 증가세이다. 교통도 불편한 외진 곳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지역이 퇴계 선생을 비롯한 선현들이 남긴 선비 정신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곳이며, 이것이 또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나침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4 갑오년은 지역의 이런 문화적 저력이 한층 활짝 피어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민과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 세밑인 12월 27, 28일 양일간 지역의 인문학 전공 교수와 대학생들이 한국국학진흥원 주최로 '소통과 협업의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모여 인문학 진흥 방안을 집중 토론하였다. 연구자들이 먼저 협력하여 인문학이 이 시대 일반 국민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는 길을 모색해 본 모처럼의 자리였다. 이처럼 올해에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저력이 국민을 감동시키고 시대를 이끄는 문화적 힘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 가지씩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병일/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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