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손방과 너름새

1976년 런던에서 이상한 동호회가 만들어졌다. '손방 클럽'(Not Terribly Good Club)이다. '손방'은 솜씨가 형편없다는 뜻이다. 입회 조건은 딱 하나. 모임의 명칭처럼 '무엇이든 지나치게 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저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창립 연회 때 일이다. 웨이터가 실수로 접시를 떨어뜨렸는데 스티븐 파일 회장이 잽싸게 이를 낚아채 별 탈 없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회원 자격 요건을 준수해야 할 회장이 이를 정면으로 어기면서 소동이 일었다. 논란 끝에 결국 파일은 회장직을 내놓아야 했다. 3년 후 파일은 이 경험담과 함께 실수와 실패에 관한 책을 펴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입회 지원자도 두 달 새 2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손방 클럽은 문을 닫고 말았다. 지나치게 잘해서는 안 된다는 클럽 취지를 이중으로 어겼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세밑 국회에서 벌어졌다. 평소 폭력'무능으로 낙인찍힌 국회가 보란 듯이 큰 건을 잇따라 터뜨리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김무성'박기춘 의원이 적극 중재에 나서 철도 파업을 전격 푼 것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개정안의 법사위 상정을 거부하면서 정회 소동을 일으키고 새해 예산안 처리가 결국 해를 넘긴 사태다.

철도 파업 중재에 대해 언론은 국회가 모처럼 정치력을 살려 밥값했다느니 추임새를 넣었다. 하지만 철도 개혁을 잔뜩 벼르던 청와대 등 일각에서는 초를 쳤다며 불만이다. 외촉법 사태의 경우 법안 처리를 당 지도부에 일임해 놓고도 혼자 잘해 보겠다며 박 의원이 몽니를 부렸다고 동료 의원조차 등을 돌리고 있다. 국회가 손방 클럽이었다면 당장 자격 상실과 해산 위기에 몰릴 일이나 평가가 달라지는 사안이라 속은 끓어도 그냥 흘러가는 모양새다.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실수나 실패가 사실은 성공일 수 있고, 성공도 깨닫지 못한 사이 실패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좀 모자란다 싶어도 낙담할 필요 없고 잘했다고 뻐길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세밑 큰 건들이 너름새(넉살 좋고 시원스럽게 떠벌려 일을 주선하는 솜씨)인지 손방인지는 좀 더 두고 지켜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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