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육군 중장과 육군 병장

얼마 전 월남(베트남) 주둔 한국군 사령부 초대 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육군 중장 채명신 장군이 서울 국립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장군이 죽으면 장군 묘역에, 사병이 죽으면 사병 묘역에 안장되는데 채명신 장군은 "전우와 함께하고 싶다"며 사병 묘역에 꼭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채명신'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음은 나의 아버지 때문이다.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아버지가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진짜 군인이라며, 멋진 분이라고' 자주 언급하신 이름이 '채명신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뒤늦게 고엽제 후유증을 인정받아 국가유공자가 되셨고 5년 전 돌아가시고 나서, 평소 본인의 뜻대로 대전현충원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계시다. 그런 사정 때문에 나는 우리나라 국립묘지에는 사병 묘역과 장교 묘역, 장군 묘역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대전에 갈 때마다 '군인은 죽어서도 계급이 존재하고 혜택도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병, 장교, 장군으로 나눠진 계급에 따라, 묘역의 묘비, 묘지 크기가 다르고 심지어 장군은 봉분을 만드는 것이 허가되는 현실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군 중장 채명신의 묘'와 내 아버지 '육군 병장 신종훈의 묘'는 사병 묘역 3.33㎡(약 1평) 넓이 안에 똑같은 크기의 묘비이며, 쓰인 글귀만 다르다. 3성 장군이 사병 묘역에 안장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월남전 사령관이 남긴 '전우들과 같이 있고 싶다'는 뜻이 이루어진 이번 일은, 생전 월남전 참전을 자랑으로 여기셨던 아버지에게도 기쁨이었을 것이요, 고인의 아들로서도 매우 고마운 일이다. 특히 이번 일은 얼마 전 모 공기업 회장을 지냈던 분이 법과 규정을 무시하고 국립묘지에 호화 묘지를 조성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망부석은 철거했지만 여전히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과 대조된다. 호화로운 묘가 그 사람의 생전의 업적과 비례하는가? 그 해답은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채명신 장군 같은 경우가 미국에서도 있었다. 미 해군에서도 4명밖에 없는 해군 원수였고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니미츠 장군은 종신 원수였으나 미국인들이 선망하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아닌 수많은 해병이 묻힌 '골든 게이트 국립묘지'를 선택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채명신 장군과 니미츠 장군의 묘지가 크고 작음에 환호하지 않는다. 장군 묘역을 마다하고 사병 묘역을 선택한 채명신 장군의 유지는 베트남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나의 아버지와 같은 수많은 월남참전 전우들에게는 큰 감동을 선물했다.

신현욱 테너'대구성악가협회 사무차장 tenore9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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