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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역사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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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을 다룬다. 그런데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사실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역사가의 의식적인 선택에 의해서다. 그 선택의 도구가 사관(史觀)이다. E. H. 카는 이러한 사실과 사관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한다.

"사실이란 결코 생선 가게의 좌판 위에 놓인 생선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광활하고, 어떤 경우에는 접근할 수조차 없는 대양(大洋)에서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같은 것이다. 역사가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것은 때로는 우연에 의거하지만 주로 그가 어디에서 고기를 낚느냐 하는 것과 그때 그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소는 그가 어떤 종류의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대개 역사가는 자기가 원하는 종류의 사실들을 건져 올리게 된다."

사관은 역사가의 주관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역사가는 아무리 객관적이려고 해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레오폴드 랑케의 해석과 판단을 배제한 '있는 그대로의 역사'도 이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거의 사실을 전부 모아 놓는다고 해서 역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본래 있는 그대로의 역사'란 것도 따지고 보면 과거 사실들에 대한 선택의 결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관이 역사가의 주관이라면 결국 사관은 역사가의 수만큼이나 많을 수 있다. 이는 역사 서술과 해석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역사학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서로 상반된 서술과 해석을 모두 진실로 인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적 무정부주의를 낳을 뿐만 아니라 자기 사관에 배치되는 사실을 역사 서술에서 의식적으로 지워버리는 지적 사기로 이어진다. 그 끝은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의 실종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좌파의 공격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반지성적 테러다. 나치의 분서(焚書)와 다를 바 없다. '교과서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들의 승리란 실상 지성의 파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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