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15일 오전 휴대폰으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무척 당황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사이버수사과 ○○○수사관이라며 자기를 소개한 이 남자는 A씨가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서초구 K은행에서 개설한 계좌가 금융사기에 연루됐다며 겁부터 줬다. 그는 "당신 계좌를 통해 돈세탁한 김○○ 이라는 사람이 붙잡혔는데, 당신이 목적을 가지고 통장을 개설한 건지 아니면 모르고 계좌번호를 가르쳐준 건지를 조사해야 하니 경찰서로 출두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사건번호까지 일러주는 바람에 A씨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 남성이 자신의 소속과 직책, 이름까지 당당히 밝힌 데다 A씨의 이름과 전화번호, 생년월일까지 알고 있어 장난전화라 넘길 수 없었다.
그는 "팀장과 통화해봐라"며 내선전화를 연결해줬고, 팀장은 "당신 계좌를 통해 5천만원이 입출금된 정황이 있으니 계좌를 좀 더 자세히 조사해봐야겠다. 당신이 몰랐다면 금융감독원에 서류를 보내 소송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이내 속내를 드러냈다. A씨가 "K은행 계좌가 없다"고 하자 그는 "주로 사용하는 은행과 계좌가 뭐냐, 신용카드 내역도 봐야 한다. 인터넷뱅킹을 해야 내역을 볼 수 있으니 신청을 해라"며 하나 둘 정보를 빼내려 했다.
그리고 협조하지 않을 시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긴 팩스까지 보냈다. '법무부 가처분명령'이라는 제목의 1장짜리 팩스엔 A씨가 모든 재산자료를 진술하고 그 재산이 합법적임을 증명, 감독받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다.
30분간 수사관과 팀장이라는 사람과 번갈아가며 통화를 한 A씨는 계좌번호를 몰라 집에서 확인 후 전화하겠다며 전화번호를 받고는 전화를 끊었다.
A씨는 곧바로 통화한 내용이 맞는지를 확인하려고 그들이 알려준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으나 그런 사람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K은행에도 전화를 해봤으나, 자신의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은 없었다. A씨는 "겁부터 준 후 끈질기게 개인정보를 캐내려 했다. 아마도 당황했다면 그들이 짜놓은 덫에 걸릴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자가 법무부장관 직인이 찍힌 팩스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하니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에 확인한 결과, "그런 번호를 쓰지 않으며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같다"고 했다.
이처럼 경찰을 사칭해 돈을 빼내가는 수법은 지난해 대구에서도 기승을 부렸었다.
지난해 9월 25일 대구 북부경찰서 경찰이름으로 불특정다수에 '사건번호와 출석요구서 발부'내용확인, daegu-112.co.kr'이 적힌 문자가 대량으로 발송됐다. 링크를 클릭하면 악성코드가 설치돼 소액결제가 이뤄지는 스미싱(소액결제 사기)이었다.
대구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경찰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전화로 사건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보이스피싱이 갈수록 치밀해지는 만큼, 경찰이나 행정기관 등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바로 대응하지 말고 전화를 끊은 뒤 홈페이지 등에 나와 있는 믿을만한 번호로 재차 확인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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