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1899~1970) 박사는 해방 이후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분류돼 있지만 그의 친일 행각은 논외로 하고 이화여대와의 관계에 대해서만 알아보기로 하자. 김 박사와 이화여대는 나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다. 일제강점기 때 이화학당의 초'중'고를 거쳐 1918년 대학부를 1회로 졸업한 그는 그해 이화학당 교사가 되면서 직업으로 이화여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유학을 거쳐 1932년 이화여전 교수 겸 교감, 1939년에는 교장이 됐다. 본격적인 친일 활동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광복 후 다시 이화여전 교장을 맡은 그는 미 군정청 하지 장군이 교정을 미군 병동으로 사용하려 하자 "미국의 여자 대학에 외국의 군대가 진주해 병동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어떻겠느냐"며 설득, 미군 진주를 막아냈다.
군정 기간 그는 이화여전을 대학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군정청 관리들을 개별적으로 끈질기게 접촉한 끝에 1946년 10월 이화여대로 승격시키고 초대 총장이 된다. 그는 남녀 공학 제안이 나올 때마다 "한국 국회 의석의 절반을 여성이 차지할 때까지는 안 된다"며 거절, 오늘의 명문대학을 있게 했다. 하지만 그의 친일 행각이 이런 공로를 희석시켜 버려 안타깝다. 1899년 오늘은 그가 태어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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