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연이 만든 두 얼굴의 동성로

19일 대구 중구 동성로 금연거리 옆 골목은 흡연자들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한 행인이 담배를 피우며 동성로 골목길을 걷고 있다. 김봄이기자
19일 대구 중구 동성로 금연거리 옆 골목은 흡연자들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한 행인이 담배를 피우며 동성로 골목길을 걷고 있다. 김봄이기자

19일 오후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휴일을 맞아 많은 사람이 붐볐지만,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덕분에 아이의 손을 잡고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엄마, 다정하게 팔짱을 낀 연인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러나 금연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골목으로 향하자, 상황은 정반대였다. 골목 구석구석엔 담배꽁초가 너저분하게 뒹굴었고, 서너 명씩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시행 1년 6개월째를 맞은 동성로 금연거리는 서로 다른 두 얼굴로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중구청은 한일극장부터 대구백화점을 거쳐 중앙치안센터까지 292m 구간을 금연거리로 정하고, 2012년 8월 1일부터 단속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2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구청의 강한 금연정책 때문에 시행 5개월 동안 291건이던 단속 건수가 지난해 1년 동안 260건으로 줄어드는 등 동성로 금연거리는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동성로와 연결된 골목은 마치 금연 '해방구'처럼 담배연기에 찌들어 가고 있다.

이들 골목엔 담배꽁초는 물론, 침'가래까지 널려 있어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동성로 골목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최모(45) 씨는 "금연거리 지정 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큰길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흡연자들이 골목으로 몰려 이전보다 10배 이상 많은 흡연이 이뤄지고 있다"며 "담배 연기가 가게에도 스며들어 앉아 있지도 못할 지경이다"고 했다.

최 씨는 가게 앞에 큼지막하게 '금연구역'이라고 쓰인 안내문을 붙여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하소연했다. 그는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말하면 인상을 써 무섭기도 하고,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가버리는 등 고충이 말이 아니다"고 울상을 지었다.

다른 골목도 사정은 마찬가지. 상인들은 담배꽁초를 치우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비흡연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장사도 잘 안된다고 했다.

불고깃집을 운영하는 유모(45) 씨는 "흡연자들과 매일 싸운다"며 "벌써 여러 차례 구청과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대책도 마련해 달라고 했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했다.

흡연자들도 막무가내식 금연정책에 불만이 많다. 정부의 금연정책에 따라 음식점 등 실내흡연이 금지되면서 어쩔 수 없이 실외에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상황에서 주변 눈치까지 봐야 하니 마치 죄인이 된 듯하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모(25) 씨는 "담배 연기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공공장소에서는 참으려 한다"며 "하지만 흡연실이나 흡연구역 등 최소한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해놓지 않고 피우다 걸리면 죄인 취급을 하니 몰래 숨거나 눈치를 보며 피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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