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정치와 포스코

'누가 유력합니까?'

지난 두 달간 포항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누가 차기 포스코 회장이 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명목상 포스코 본사가 포항에 있는데다 수많은 협력사가 산재해 있어 회장 인선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언론사에 몸담고 있으면 정보를 많이 갖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상대방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다. 그냥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하다는 궁색한 답변밖에는….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미로 게임'을 보는 듯했다. 정답도, 오답도 없고 예측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지난 11월 정준양 회장이 퇴임하겠다고 밝힌 직후부터 온갖 소문이 무성했고, '뜬구름 잡기'식 이야기가 쏟아졌다. 어제는 A후보가 유력하다고 했다가 오늘은 B후보가 유력하다는 식이었다. 한 매체는 최종 후보군에도 오르지 못한 C씨가 회장에 내정됐다고 크게 보도했다. 이를 두고 'C씨를 낙마시키기 위한 공작이다' '아니다'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됐다. 이렇게 자천타천으로 후보에 오르내린 내외부 인사는 무려 10명이 넘는다.

그 과정에서 더욱 끔찍한 일은 후보들과 정치권의 연관설이다. A후보는 새누리당 실세 누구와 친하고, B후보는 청와대 실세 누가 밀어주고 있고, C후보는 지역 국회의원들이 밀어주고 있다는 식이다. 일부 후보들이 가족, 지인 등을 총동원해 정치권에 줄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일부는 실제 확인되기도 했다. 재계 서열 6위의 글로벌 기업 총수가 되려는 이들이 정치권에 기대 '왕관'을 쓰려 했다는 자체가 한 편의 코미디다. OECD 국가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포스코가 아무리 주인 없는 기업이고, 전'현직 회장들이 정치권의 비호를 받은 역사가 있다고 해도, 이것은 절대 아니다. 이런 분위기로는 매출 감소로 위기에 처한 포스코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권이 기업 경영에 개입하면 될 일도 안된다는 사실을 똑똑히 지켜보지 않았던가.

우여곡절 끝에 16일 권오준 기술총괄사장이 신임 회장에 내정됐다. 회장 내정자는 기술력, 국제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보다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단호하게 정치와 결별하는 일이다. 정치권에 줄을 대고 이를 이용하려는 내부 분위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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