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죽음에 대한 고찰

때론 자살의 결심을 한 이들에겐 살아 숨 쉬는 현실이 가장 고통스러운 공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의 문명화된 삶이 소외나 죽음을 포괄해서 행복시대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오히려 단순한 아날로그 삶을 영위하던 시대가 느림의 미학을 얘기할 수 있는 마지막 시공간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은 반드시 삶의 시간적 소비를 지나 죽음을 만나게 된다. 죽음은 삶의 연장선에서 만나는 생명체의 피할 수 없는 귀결점이기도 하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잉태와 연결된 생명현상의 순환논리로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의 자연법칙이라는 사실이다. 굳이 이 지면을 통해 우울한 분위기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필자의 직업이 삶보다도 죽음의 이미지에 가까이 서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활동하기 전 국립의료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정형외과의 특성상 심각한 외상으로 삶의 마지막과 이별하는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목격하고 마지막 의술 행위를 하곤 했다. 심장이 멎는 순간을 맞이할 땐 의료인으로서 최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절망감을 느끼곤 했지만 막상 이승의 연을 끊고 떠난 이를 생각할 때 비로소 죽음에 대한 의미와 이미지를 재삼 곱씹게 된다.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멈출 수 없는 법칙을 인위적으로 막으려는 노력이 필자에게 주어진 직업이고 사명이다. 그러나 이젠 죽음을 집안의 골방에 숨겨놓은 그 무엇으로 남겨져선 안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본격적인 죽음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필자가 기억하는 환자 중 한 사람은 이승에서 작별할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분에게는 죽음이 두려움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머물다간 이곳에서 맺은 인연들을 할애된 시간 속에서 하나하나 정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경건함이 저절로 베여나는 태도였다. 과연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이분처럼 차분하고 경건하게 남은 생을 준비할 수 있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필자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죽음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누구나 만나야 하는 인생의 통과의례이다.

죽음을 전제한 삶은 더욱 경건하고 책임 있는 행동양식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나 죽음을 전제하지 않고 삶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착각이나 오해는 현실에서 자신의 태도를 합리적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수록 죽음에 대해 현대인들이 만나는 반응은 점점 더 어색하고 어두워진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보여준 선조의 반응과 방식은 매우 자연스러웠고 또 어색하지 않은 의연한 것이었다. 이젠 죽음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일상에서 함께 일어나는 생활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성이 크게 제기되고 있다.

우병철 365정형외과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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