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악마는 거울 하나를 만들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 거울은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조리 찌그러뜨려 거의 보이지 않게 만들고 쓸모없고 흉측한 것들은 더욱더 크게 비추어 돋보이게 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캄캄한 암흑의 세계로 만들고 아무리 정직하고 착한 사람도 흉측한 악마의 모습으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악마는 재미있다며 좋아했습니다. 거울은 친절하고 신앙심 깊은 사람을 사악하게 일그러뜨렸고 악마는 자신의 이 교활한 발명품을 보며 이제야 인간들이 처음으로 세상과 자신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악마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하느님을 놀려 줄 생각을 하며 하늘로 올라가다가 거울이 점점 미끄러워져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엄청난 불행이 일어났습니다. 모래알보다 작은 거울 조각들이 바람에 날려 세상 곳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티끌만 한 조각 하나에도 큰 거울과 똑같은 힘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눈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뒤틀리게 보게 되고 심장에 박힌다면 심장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거울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에 나오는 악마의 거울입니다.
눈의 여왕은 이렇게 불행하고 무서운 거울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이 동화는 마주 보는 다락방에 이웃해 살고 있는 소년 카이와 소녀 게르다의 사랑과 모험을 그린 작품입니다. 악마가 만들어 깨트린 거울 조각이 세상을 떠다니다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혀 버리면서 그들의 불행은 시작됩니다. 카이는 게르다를 보며 못생겼다고 멸시하고 그들이 키우던 장미꽃에 벌레가 생겼다고 화분을 발로 차 버렸습니다. 놀라서 소리 지르는 게르다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카이는 남은 장미마저 꺾어 버립니다. 너무나 변해 버린 카이를 보며 슬프게 울고 있는 게르다에게 우는 모습이 추하다고 냉정하게 돌아서 가 버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에겐 더 큰 불행이 시작됩니다. 게르다를 혼자 두고 썰매를 타러 갔던 카이가 매혹적이고 사악한 눈의 여왕에게 이끌려 흔적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카이를 데려간 눈의 여왕은 마법을 걸어 카이가 모든 것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도 카이의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게르다는 카이에게 한 번도 보여 주지 않고 아껴 두었던 빨간 신발을 신고 드디어 카이를 찾으러 길을 떠납니다.
작가 안데르센은 게르다가 카이를 찾아가는 멀고도 험난한 여정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로 만들어 줍니다. 게르다를 도와주려 했던 까마귀와 비둘기, 눈부신 성에 사는 왕자와 공주를 만나 얻게 된 금으로 된 마차, 무서운 산적과 착한 산적의 딸, 굶주림과 슬픔에 지쳐 있는 게르다에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밭과 빨간 비단 침대가 있는 이곳에서 함께 살자고 유혹하는 요술쟁이 할머니….
안데르센은 이 동화에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겪어야 하는 삶의 희로애락을 슬프고도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펼쳐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게르다를 도와준 핀란드 여자에게 게르다를 태우고 온 순록은 불쌍한 게르다에게 모든 것에 대항할 수 있는 큰 힘을 달라고 간청하지만, 핀란드 여자는 말합니다. "나는 게르다가 가지고 있는 힘보다 더 큰 힘을 줄 수 없어. 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겠니? 인간과 동물이 게르다를 얼마나 도와주고 싶어하는지 보이지 않니? 게르다의 힘은 마음속에 있어. 착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야."
안데르센은 하나의 선한 진실이 수없이 많은 사랑을 만들어 엄청난 힘을 가진 악을 무너뜨린다는 걸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카이를 만난 게르다가 뜨거운 눈물로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을 씻어내는 것으로 이 동화는 끝이 납니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아직도 무수히 많은 거울 조각들이 이 세상을 떠돌아 다닌다고 경고합니다. 언제 우리의 눈과 심장을 공격할지 모르는 악마의 거울은 오늘도 우리를 노려볼지 모릅니다. 혹시 나의 눈이 나쁜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심장이 얼음처럼 차가워져서 사랑을 잃어버리지나 않았는지.
황영숙/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