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재작년에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지은 '총'균'쇠'(Guns, Germs, and Steel)라는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 총(무기)과 세균(병균), 금속이 인류(국가)의 운명을 바꾸었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1532년 11월 16일, 168명의 오합지졸을 거느린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인구 수백만 명의 잉카제국 황제 아타우알파를 생포했다. 이 사건은 근대에 일어난 대륙 간 충돌 중 가장 큰 사건으로 유럽이 잉카제국을 무너뜨리고 신대륙 아메리카를 지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68명의 스페인군이 500배가 넘는 잉카제국군을 격파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쇠칼, 총, 말 따위였다. 잉카군이 가진 것은 돌, 청동기, 나무 곤봉이 전부였다. 그리고 인간은 농경 생활을 하면서 야생동물을 가축화하고, 그 과정에서 동물로부터 세균에 감염되고 면역성을 키운다. 일찍이 농경 생활을 한 유럽인은 병원균에 대한 상당한 면역성을 가지게 되고, 유럽인들이 퍼뜨린 인플루엔자, 페스트 등과 같은 병원균은 원주민을 몰살시키는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유럽의 신대륙 정복 과정이다.
중국은 15세기까지만 해도 이 모든 분야에서 단연 세계 제일이었다. 그런데 그 후 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고 뒤처져 있던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을까.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세 때 중국은 전 세계의 기술을 선도했다. 중국이 처음 발전시킨 중요한 기술에는 주철,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 등 수많은 문물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정치적인 힘, 항해술, 제해권 등에서 세계를 선도했다. 콜럼버스가 보잘것없는 세 척의 배로 협소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동해안에 도달하기 수십 년 전에 중국은 이미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진출했다. 그런데 어째서 중국의 배들은 희망봉을 돌아 서진하여 유럽을 식민지화하지 못하고 그토록 낙후되어 있던 유럽에 기술의 선도자 위치를 빼앗겼을까?" 책에서는 그 이유를 '유럽의 분열과 중국의 통일'에 있었다고 명쾌하게 답하고 있다. 중국은 진나라 이후 2천 년 이상 정치, 문화적 통일성을 지켜왔다. 유럽은 14세기까지 1천 개, 1500년에는 500개의 소국이 존재했고, 1980년대에는 25개까지 줄어들었다가 현재는 약 40개국으로 분열되어 있다.
중국의 통일은 획일성을 가져왔고, 유럽의 분열 지향성은 다양성을 가져왔다. 어느 한 폭군의 결정은 모든 변화를 중단시키고 발전을 가로막았다. 왕성했던 중국의 선단이 갑자기 항해를 중단하고, 문화대혁명 기간 중 5년이나 전국의 학교가 문을 닫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콜럼버스는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신하로 있으면서 모두 거절을 당한 후 스페인 국왕에게 탐험을 위한 배를 얻어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열된 유럽은 박해받는 개혁자에게 피난처와 지원을 제공하고 국가 간의 경쟁을 촉진했으나,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 책에서는 이러한 분열을 획일성이 아니라 다면적인 개념으로 파악하고, 그 분열은 자유로운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국사를 국정교과서로 하려는 교육부의 움직임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가 오류 등으로 교사와 학생'부모로부터 거부당한 직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현재의 검정교과서는 다양한 종류의 교과서를 만들어 학교가 선택하게 하는 것이며,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하나의 교과서를 만들고 획일적으로 가르치도록 하는 제도다. 다면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를 정부가 획일적으로 정형화해서는 안 된다.
획일화라는 측면에서는 국정 기조의 하나로 자리 잡은 비정상의 정상화도 마찬가지이다. 정상화는 기존의 정해진 틀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과거 지향적이다. 토머스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과학 이론의 진화는 비정상성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기존의 규칙을 벗어나는 비정상적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과학 혁명은 일어날 수 없고, 정상적인 상태만 지속되면 진보도 없게 된다. 독재에 대한 비정상이 민주화 혁명이었던 것과 같다. 어쨌든 인간의 자유로운 사상에 기초하는 다면성과 비정상성을 획일화로 누르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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