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앨리샤는 사교성이 꽤 좋은 편이었다. 체셔와는 달리 누군가 집에 찾아올 때면 도망가지 않고 근방에서 맴돌다가 금세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맡고 장난을 치고 애교도 부리곤 했다. 때론 천연덕스럽게 지인들 발밑에서 함께 자다가 잠이 깨면 온몸을 쭉 펼치고 뒹굴며 애교를 부리는 통에 오빠와 나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마도 아기 고양이 시절에 많은 사람을 접하고, 여러 동물 친구들과 같이 생활해 왔기에 낯선 사람에게도 쉽게 마음을 여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턴가 앨리샤의 행동이 바뀌기 시작했다. 새 집으로 이사 온 후부터 겁쟁이 체셔보다 앨리샤가 더 외부인의 방문에 겁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앨리샤는 쏜살같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로 달려가 몸을 숨긴 후 꼼짝달싹 않고 숨죽인 채 그 사람이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처음엔 앨리샤가 유별나게 겁이 많은 체셔의 행동을 보고 배운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낯선 이가 올 때면 구석에 숨어서 잠을 청하는 체셔와 달리 앨리샤는 숨어 있는 내내 '긴장' 그 자체였다. 잠도 자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몸을 웅크리고 낯선 이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고는 다음 날까지도 연이은 후유증으로 고생을 해 바라보는 우리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앨리샤는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날 이전까지 다락방이 숨어 있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믿고 있던 앨리샤에게 다락으로 책상을 들고 올라온 목수 아저씨는 미처 예기치 못한 공포 그 자체였다. 도망쳐야 할 계단 쪽엔 낯선 사람이 서 있어 빠져나갈 수 없었고, 주변을 돌아봐도 자신이 숨을 공간이 없다는 걸 깨닫자 잠시 멈칫거리던 앨리샤는 잠깐 눈을 돌린 사이에 뛰어내렸다.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잘 뛰어내린다는 고양이긴 했지만, 그동안 난 녀석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앨리샤는 평소에 높은 곳에 잘 올라가지 않는 고양이였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달리기는 잘해도 점프는 거의 하지 않기에 오죽했으면 점프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높은 곳과는 영 담을 쌓고 지냈었다. 게다가 몸무게와 달리 언제나 가볍게 뛰어내리는 체셔와는 달리 우당탕쿵탕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부실한 앨리샤라 늘 책상이나 의자 위에서 내려올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곤 했었다. 그런 녀석이 다락에서 1층까지 뛰어내린 것이다. 예방접종 주사를 맞았을 때도 주사 맞은 쪽 다리를 이틀이나 절뚝거리던 예민한 녀석이었기에 행여나 싶은 마음에 바로 따라가서 다리를 만져 보았지만 다행히도 아픈 기색이 없었다. 무척 놀라긴 했지만 덕분에 앨리샤의 뛰어난 점프 실력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집을 찾아오는 손님이 뜸해지면서 앨리샤가 뛰어내렸던 그 난간 자리는 앨리샤가 애용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앨리샤는 그 아슬아슬한 난간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우리를 구경하기도 한다. 가끔은 난간 아래로 빼꼼 튀어나온 자신의 꼬리를 가지고 위태위태하게 몸을 기울여 장난치는 통에 우리 가족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뛰어내려도 괜찮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앨리샤 자신은 전혀 위험하다거나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이젠 예전의 앨리샤 모습으로 돌아와서 낯선 사람을 덜 경계하길. 그래서 다시는 그렇게 겁을 먹고 뛰어내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비록 다치지 않는다고 해도 보는 내 입장에선 너무나 무서운 날갯짓이었으니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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