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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시와 함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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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1935년~ )

다리가 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스스로 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타고 어깨를 밟고

강을 건너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서럽다

왜 스스로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남만 건네주는 것일까

깨고 나면 나는 더 억울해지지만

이윽고 꿈에서나마 선선히

다리가 되어주지 못한 일이 서글퍼진다

-시집『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랜덤하우스, 2007.

신경림 시인이란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시는 「갈대」다. 갈대가 우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제 조용한 울음 때문이라는, 인간이란 근원적으로 슬픈 존재라는 깨달음을 형상화한 시이다. 그의 시는 이렇듯 인간 존재에 대한 끝없는 물음에서 비롯된다. 이 시 또한 그러한 물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가, 예수, 공자와 같은 인류의 스승들은 한결같이 사랑을 말한다. 자비(慈悲)를 말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고, 네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말한다. 모두 나보다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삶이 세상을 건강하게 하고 평화롭게 하리라.

이 시의 '다리'는 나 아닌 남을 위한 사랑을 상징한다. 시인은 자신이 다리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때로 그런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그 억울함을 느낀 자신을 반성한다. 완전에 이르려는 아름다운 정신이다. 사람은 자기의 이득을 위해 사는 사람과 남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자기의 이득을 위해 사는 사람이 지배하는 사회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신경림 시인과 같이 '다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는 완전히 추락하지 않는다.

권서각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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