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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시와 함께] 수선화에게-정호승(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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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가 나뭇가지위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열림원, 2011.

시가 산문과 구별되는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운율이 있다는 것이다. 시가 처음부터 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노래에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에는 노래의 흔적이 운율로 남아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저절로 노래하듯 읊게 된다. 명령과 서술의 반복, 3음보와 4음보의 적절한 변주에 의해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이 시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연유도 우리의 정서에 맞는 내용과 운율로 구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의도적으로 이런 계산을 하여 쓴 시는 아닌 듯 보인다. 시인의 내면에서 촉발된 정서가 순간적으로 분출되어 매듭 없이 전개되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 시인의 내면에서 성숙된 정서가 어느 순간 알에서 부화하듯 탄생한 것은 아닐까. 그러하기에 이토록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래서 정호승은 타고난 시인이란 느낌이다.

사람은 원초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이 시에서 외로움의 주체는 물가에 앉은 수선화, 검은머리도요새, 하느님, 나뭇가지 위의 새, 산 그림자, 종소리 등이다. 외로운 것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위안을 준다. 특히 산 그림자가 하루에 한 번씩 외로워서 마을로 내려온다는 것은 정호승, 그만이 발견한 그만의 언어다.

시인'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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