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최근 서울 송파구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사회적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킨 세 모녀의 죽음과 비극은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의 한계와 복지 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낸 안타까운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세 모녀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긴급지원방안과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숨진 박 씨 모녀가 질병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생계유지를 위한 수입도 끊어진 상태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세워둔 어떠한 사회보장체계의 도움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과 사별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박 씨는 한 달 전 다쳐 다니던 식당의 일자리도 잃고 수입이 끊어진 상태였고, 큰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비가 부담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막내딸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해왔던 것이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의료급여, 긴급지원제도의 접근과 지원에서 제외되어 가난과 질병, 그리고 관계망의 단절이라는 총체적인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 모녀의 죽음 이후에 정부 관계자들이 나서서 빈곤층을 돕는 사회부조제도가 작동 중인데 정보가 부족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빈곤의 현장에서 일해 온 필자는 세 모녀의 죽음 보도를 보고 이들이 당연히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조건이고, 수급자나 긴급지원제도를 신청해도 안 되었을 것이며, 구멍 많은 복지체계가 빚은 필연적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기초생활수급자뿐만 아니라 차상위계층을 비롯한 빈곤 가정에 대한 보다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 안전망의 그물을 좀 더 촘촘히 하고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의 보완과 현장에 대한 유연한 대처가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면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이 되는 근로능력의 판단과 긴급지원제도의 위기 사유에 대한 결정에 있어 제도와 규정만 들이댈 것이 아니라 현장과 상황에 대한 정확한 실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수급자 선정에 있어 복잡한 서류와 긴 처리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가정이 해체되고 주거할 공간이 없어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들에게 주소를 요구하는 게 현실이다. 노숙인이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면 주소를 요구하고, 당장 아파서 의료급여를 신청하면 2, 3개월간의 진료기록을 제출하도록 하는데, 경제적인 어려움과 삶의 위기에 처한 서민들이 일어설 수 있는 현장 중심의 실질적인 복지체계 구축이 절실한 것이다.

필자의 유년시절 고향 농촌에서는 보릿고개로 모두 힘들어 할 때 소작농으로 어렵게 살아가던 이웃 할아버지가 체념 어린 말로 하던 속담이 기억난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참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무언가 배경이 있고 환경이 갖추어져야 무슨 일이 된다는 말인데, 그 촌로가 술에 취해 격정으로 내리던 결론인 '없는 사람은 계속 없이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이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빈곤의 세습과 불안전한 고용상태, 그리고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발생한 세 모녀의 죽음을 우리는 단지 일회적인 사건의 하나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얼마 전 향후 국가경제성장에 있어 국민소득 4만달러의 초석을 놓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거기에 앞서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기에 내몰린 빈곤 계층들이 일어설 수 있는 자활의 인프라, 비빌 언덕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현재 작동되고 있는 사회복지체계와 사회안전망에 허점이 없는지 세밀하게 살펴보고, 사회복지 제도의 효율성과 아울러 서민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김휘수/대구애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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