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술잔 돌리기

한국인의 술 문화는 유별나다. 폭탄주만 마시는 게 아니라 술잔을 돌려가며 마신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술잔에 자기 먹고 싶은 만큼만 따라 마신다.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술잔이 비면 옆에서 따라 주지만 돌리는 경우는 없다.

술잔을 돌리는 습관은 아프리카의 작은 종족에게만 남아있을 뿐 지구 상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한다. 술잔을 돌리다 보면 2, 3차로 이어지고 결국 폭탄주로 이어진다. 이렇게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기도 하고 다음날 숙취로 일하는 데 지장을 받기도 한다. 또 지방간이나 알코올성 간염 등 간질환이 생겨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한다.

형이상학적으로 보면 술잔을 돌리는 음주문화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술잔을 돌리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조직, 조직과 조직을 결속시키고 단결심이 생기는 효과가 있다. 같은 잔에 부어 마심으로써 좀 더 진한 형제애가 생길 수도 있다.

옛날 서로의 피를 같은 잔에 섞어 나눠 마셔 혈맹의 결의를 다지는 것처럼. 술잔 주고받는 한국적 음주 풍습의 기원은 아름다운 정신 작업이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형이하학적으로 볼 때 건강 측면에선 꼭 없어져야 할 관습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반 이상이 보유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술잔을 통해 전염되는 가장 흔한 균이다. 이 균에 감염되면 위염, 위궤양, 위암, 위 임파종 등 위장 질환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 위암의 중요한 원인으로 이 균이 지목됐다.

즉 위암이 술잔 돌리기로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술잔을 휴지로 닦거나 물로 씻거나 딴 술로 소독하거나 혹은 알코올에 담가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죽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술잔 돌리는 것은 위암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

최근 유행하는 독감이나 감기도 술잔으로 옮길 수 있다. 새로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는 결핵균도 침과 가래를 통해 옮길 수 있다. 간염도 옮길 수 있다.

특히 A형 간염은 술잔 돌리기로 전파 가능성이 높은 질환이며, B형 및 C형 간염은 잇몸이 좋지 않아 풍치가 있거나 피가 나는 경우 감염 우려가 있다. 바이러스에 의해 몸에 저항력이 떨어질 때 생기는 구순포진도 술잔에 바이러스가 묻어 옮길 수 있으며, 충치를 발생시키는 충치균의 감염 경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정서상 윗사람이나 선배가 술잔을 권하면 사실 거절하기 힘들다. 윗사람이 술잔 돌리지 말자고 하면 그대로 지켜진다. 윗사람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박대환 대구가톨릭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