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년 작)의 한 장면. 사무라이 대장 가쓰모토는 포로가 된 미군 장교 톰 크루즈에게 무사도(武士道)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벚꽃처럼 모두가 죽어. 그러나 모든 건 존재 의미가 있지. 그걸 아는 게 무사도야." 사무라이의 삶이란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떨어지고 마는 벚꽃의 생멸과정과 같다는 비유다. 일본말에 '꽃이라면 벚꽃이요, 인간이라면 사무라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실제 사무라이의 삶은 벚꽃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충성과 헌신의 전형적인 사무라이들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살았던 전국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을 뿐,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후의 에도(江戶)시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간상이었다. 일본 영화에는 휘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명예를 지키려는 사무라이의 할복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작위적인 것이다. 당시의 사무라이는 칼만 차고 있었을 뿐 조선의 관료와 비슷했고, 도시락을 싸다니는 일본 대기업 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할복형을 받은 사무라이가 배를 가르는 시늉만 하거나 칼로 뱃가죽만 긋고 나면 뒤에 칼을 들고 서 있는 사무라이가 목을 자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는 참수형이었다.
1970년 일본 육상자위대 앞에서 직접 할복을 한 소설가 미사마 유키오 같은 정신병자가 가끔 있었기에 할복과 사무라이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가쓰모토의 모델이 된 영웅 사이고 다카모리도 세이난(西南)전쟁에서 패한 후 부상이 너무 심해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포로가 되기 싫어 할복했을 뿐이다.
벚꽃은 사무라이의 전유물도, 동일시할 만한 대상도 아니었다. 그냥 서민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꽃이었다. 시즌이 되면 벚꽃나무 아래에서 꽃비(花雨)를 맞으며 도시락을 먹는 것을 즐길 뿐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神社)가 있던 대구 달성공원에는 벚꽃이 만발했지만, 해방이 되면서 모두 뿌리째 뽑혔다. 그러다가 1970, 80년대 다시 심기 시작한 것에서 보듯, 전국의 벚꽃 명소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비록 일본에서 시작된 벚꽃놀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편견 없이 자연을 즐기는 것이 좋다. 벚꽃을 보면서 일본의 패권주의와 과거사를 떠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번 주말 벚꽃축제가 열리는 경주의 김유신장군묘, 보문단지 벚꽃이 절정이라고 하니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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