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5년 전에 이사를 온 곳이다. 이사를 오고 나서 우리 가족이 가장 난감했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배달음식 문제였다. 이사 오기 전 동네는 20년 넘게 살아 짜장면도 치킨도 찍어놓고 시키는 단골집이 있었다. 그나름 미식가인 집안 식구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통과해 20년 동안 시켜먹다 보니 다른 동네에서 그 맛을 못 잊어 헤매면 어쩌나 하는 일말의 두려움도 있었다. 결국 그 두려움은 현실로 다가왔다.
가끔 집으로 배달되는 음식점만 모아놓은 광고 책자가 아파트 현관문에 붙어 있으면 버릴 것이라도 들고 들어온다. 뒤적거리다 보면 다들 비슷한 메뉴에 비슷한 구성, 비슷한 가격의 피자, 치킨, 중국음식들이다. 어머니도 밥하기 귀찮을 때가 있고, 혼자 있을 때 부엌으로 가는 것조차 귀찮을 때 결국 그 책자를 펼쳐서 간단하게 한 그릇 시킨다. 그런데 시키면 적잖이 실망할 때가 많다. 내용물이 한쪽 구석으로 쏠린 피자는 차라리 참을 수 있다. 치킨에 쓴 기름은 제대로 갈지 않았는지 닭고기를 씹을 때마다 뭔가 불쾌한 냄새가 올라올 때도 있다. 이런 치킨은 먹고 나면 반드시 배탈이 난다.
가장 '뚜껑 열리게 하는' 음식은 중국음식이다. 스티로폼 그릇에 담아와서 비닐랩 벗길 때 그릇 부서질까 겁난다. 맛이라도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중국집은 탕수육 소스에도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어 달콤한 맛이 아니라 들큰한 맛이 느껴진다. 짜장면, 짬뽕은, 더 말하지 않겠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자영업자가 늘었고, 그 자영업자의 대부분이 요식업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금 내가 이사 온 동네는 재개발로 새로 유입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주변에 배달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우연히 동네를 지나가다 중국집의 모양새를 보니 주방과 랩 싸는 곳만 있고 테이블이 없는 곳도 있었다. 요즘 대부분의 배달음식점은 비용을 최소화하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이런 구조로 돼 있다.
경제가 어려워 인건비라도 줄여야 하고, 그릇 찾는 데 들어가는 오토바이 기름값이라도 줄여야 하는 자영업자의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동네 중국집이 약 48쪽 되는 배달 음식 광고책자 속 대여섯 곳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도 충분히 이해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경쟁의 전선에서 뛰는 동네 요식업 사장님들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다. 이왕 음식점으로 장사 시작하는 거, 맛있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내가 만든 짜장면 한 그릇이 어느 가난한 집의 생일을 맞은 아들을 위한 특별음식일 수도 있고, 내가 튀긴 치킨 한 마리가 어느 집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아들이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 산 선물일 수도 있다.
세상이 좋아져 여기저기 음식이 차고 넘친다지만 음식은 '한 끼 때우기 위해' 소비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만든 음식에 누군가가 행복해했다면 그 사람은 그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 그 음식을 다시 찾는다. 이 순환 구조는 느리지만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는 구조라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