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하는 노인들 대부분은 '치매 초기'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치매라는 확진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의식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의식 상태에서 노인들은 자기의 과거를 표출한다. 물론 표출의 방법과 내용은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르다.
그 표출 내용은 자신이 평생을 자랑으로 삼고 싶었던 것도 있고, 하고 싶었던 것을 못한 데서 오는 회한에 젖은 것도 있고, 억압에 의해 눌려 있던 자신의 감정을 분노로 발산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한 어르신이 어느 날 뜬금없이 "청와대에서 오라는데 와 나를 여기에 붙잡아 놓고 괴롭히노?" 하신다. 어르신이 젊은 날 청와대를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감한 과거가 나오는 사례도 많다. 두 가지만 사례를 들어보자.
A어르신은 별명이 '돌리고 노인'이다. 그는 여자만 보면 춤을 한 번 추자고 하는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것도 동작과 함께 '돌리고 함 하까요?'라고 마치 옛 시절의 추억이 너무 즐겁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시설 종사자들이 처음에는 귀엽게(?) 지켜보다가 그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슬슬 피하는 상황까지 간다.
B어르신의 경우는 또 다르다. 어느 날 휠체어에 몸을 실은 불구의 중년 여자 분이 찾아왔다. B어르신의 근황을 물으러 시설에 방문했다. 사연은 이랬다. 둘 사이는 부녀지간이었다. 딸은 태어나서 돌을 지나기 전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평생 단 한 번도 스스로 일어서 본 적이 없는 불구였다. 아버지는 이런 딸이 너무 안타까워 자신의 재산에 대해 다른 자식들에게는 일절 함구하면서 이 딸에게는 소상히 일러 주면서 자신이 죽으면 잘 관리 하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치매가 찾아왔다. 이후 노인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딸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불구의 딸은 육체적으로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 정신적 충격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본심이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급기야 딸은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하였고 어느 날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본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치매 증상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삶 속에서 크게 자리 잡고 있던 사람에 대해 집착하는데, 그 감정의 외부적 표출 방식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치매환자라고 해서 정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짱하게 돌아오는 날도 있다. 이때 노인에게 그 사연을 이야기했다. 노인은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딸이 보고 싶다고 했다. 노인은 평생, 이 딸을 가슴에 걱정하는 마음으로 담아두며 억압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의 자신 모습은 온전하지 못한 정신 상태에서 더 잘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늙어서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잘 살아야 될 일이다.
김제완 사회복지법인 연광시니어타운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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