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공무원 망국론<亡國論>

"일하다가 젊은 시절 다 보냈지요."

과거에 고위 관료를 지낸 분들을 만나면 가장 흔하게 듣게 되는 얘기다. 그분들이 일했던 부서는 경제기획원, 내무부 등으로 달랐어도, 들려주는 내용은 대개 비슷했다. "월급은 쥐꼬리만 했지만 열정과 패기로 넘쳐났지요. 밤새워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관에 모여 작업하는 것이 보통이었어요." "주말, 평일을 가리지 않고 현장 확인을 위해 검은색 지프 타고 전국 곳곳을 누볐고, 청와대나 장관 등 '윗선'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을 되풀이했어요." 그분들이 들려주는 무용담은 1, 2시간으론 부족하고 끝 모를 정도로 이어지곤 했다.

굳이 그분들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1960, 70년대 한국의 공무원들은 국가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과실은 이런 관료들이 없었으면 실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요즘 공무원들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열정과 패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신주의에 푹 젖어 있다. 모든 공무원이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상당수가 '윗선'에서 지시한 대로 따르는 척하다가 자리 보전하며 시간만 보내는 분위기다. 대충 하더라도 잘릴 염려가 없고 큰 탈도 없다.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더라도 월급 잘 나오고 퇴직 후에는 연금 받으며 일반 백성보다 훨씬 잘산다. 운 좋으면 퇴직 후 적당한 공기업 자리 하나 꿰차는, 부가적인 혜택도 있다. 공무원 경쟁률이 수백 대 일에 이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로 인해 '공무원 망국론(亡國論)'이 고개를 들고 있다. 총리실, 해경,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경찰 등 정부 관련 부처 모두가 무능과 태만, 무기력의 정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는커녕 꽃다운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공범'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다.

공무원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현재로선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럴진대 어느 국민이 이런 공무원들에게 세금으로 월급 주고, 탈 많고 말 많은 연금까지 계속 채워주고 싶겠는가.

'관리가 받는 보수는 백성의 기름을 짜낸 것'이라던 옛말에 공감하는 국민이 한둘이 아니다. 법과 제도를 정비해 공무원 의식과 태도를 바꿔놓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 이상 기약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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