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국 가디언지에 '맞아. 런던은 불친절한 도시야'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이 글을 쓴 칼럼니스트는 "도시에 산다는 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동네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심지어 지금 우리 엄마가 뭐 하는지 다 알고 있는 작은 도시에서 런던으로 이사 온 것은 이 불친절함이 필요해서"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이 맞다. 어떤 국가를 막론하고 대도시의 불친절함은 보편적이다.
대구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유년시절을 모두 시골에서 보냈다. 이웃들은 내가 누군지, 우리 집 대문이 무슨 색인지도 다 알았다. 동네 사람들의 호칭은 공동체가 수집한 사생활 정보에 따라 결정됐다. 창원이 고향인 A할머니는 '창원때기'(창원댁), 집 대문이 파란색인 B할머니는 '파란집'으로 불리는 식이었다. 감수성이 폭발했던 사춘기 시절에는 "어디 가노? 아부지는~?" 하고 만날 때마다 똑같이 묻는 동네 어른들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피해 다닌 적도 있었다. 뼛속까지 '촌년'이었지만 대학 입학과 동시에 도시의 익명성에 익숙해졌다. 일주일에 한두 번 들르는 동네 슈퍼 아줌마, 세탁소 아저씨가 이웃의 범주에 들어올 뿐 내 옆집에 누가, 몇 명이 사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고향집에서 '창원댁 고추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앞집 창원댁 할머니가 아버지의 동의도 없이 우리 집 텃밭까지 진출해 고추 모종을 심었고, 수시로 드나들며 가꿨다. 물론 그 수확물은 우리 가족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었지만, 이 사건은 내가 대구에서 '도시화 10년'을 거친 뒤 겪은 일이어서 가족 토론으로 이어졌다. 내가 "대문은 잠그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최소한의 사생활은 서로 지켜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주장을 펴자 아버지는 딱 한마디로 토론을 끝냈다. "고마 됐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그곳에 사는 아버지의 의견이었다.
사적 공간까지 공유하는 작은 마을의 삶과 도시의 삶은 대조적이다. 지금 내가 사는 빌라 건물에서는 서로에게 최소한의 '간섭'만 하며, 계단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도시에서 '섣부른 관심 표현과 아는 척은 오지랖이요, 주책'이라고 합리화하며 그들의 눈을 일부러 피했지만, 어쩌면 누군가 내게 먼저 인사해 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이웃이 그리웠다. 2년 넘게 한 건물에 살아도 이웃이 아니라 '공동 세입자'일 뿐인 도시의 익명성이 아쉽고 또 서운했다. 하지만 이 삭막한 도시에서 내 맘을 알아준 이가 있었다. 출근길 아침, 주차선을 침범해 엉망으로 주차한 내 차 앞유리에 누군가 꽂아둔 메모를 발견했다. '죄송하지만 다음번엔 조금만 당겨서 주차해 주세요^^' 그래서 나도 그 종이에 답글을 달아 옆 차 앞유리에 꽂아뒀다. '죄송해요. 다음번엔 예쁘게 주차할게요ㅜㅜ' 결국 관계를 만드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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