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긴 것도 하는 일도 다른 남남이지만…주거공동체 '내가 그린 우리집'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내가 그린 우리집'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 공동체다. 7일 오후 일찍 퇴근한 식구들이 2호집인 '물음표집'에 모였다.

요즘 사람들은 혼자 사는 즐거움을 예찬한다. 최근 종영한 케이블 채널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는 혼자 사는 청춘 남녀들의 이야기를 그려 큰 인기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이런 시대 유행을 거슬러 일부러 뭉쳐 사는 젊은이들이 있다. 아파트 브랜드처럼 '내가 그린 우리집'(이하 우리집)이라는 이름도 있다. 얼핏 보면 싱글족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작은 민주주의 공동체 같은 느낌이다. 그 속에 사람과 법이 있고, 복지가 있다. 도대체 뭐 하는 곳일까. 성별과 직업, 성격, 비슷한 것보다 다른 것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 공동체 '우리집'을 찾아갔다.

◆수상한 공동체, '내가 그린 우리집'

대구 남구 봉덕동의 주택가. 밥집과 세탁소, 슈퍼마켓이 사이좋게 자리한 평범한 주택가에 '우리집'이 있다. 우리집은 총 세 군데로, 걸어서 1분 거리에 흩어져 있다. 각 집마다 공간의 성격을 담은 이름도 붙였다. 친환경 공동체를 꿈꾸는 '그린집'과 아직도 성격이 애매한 '물음표집', 고양이 네 마리와 함께 사는 '고집' 중 가장 먼저 생긴 곳은 2012년 탄생한 그린집이다. 그린집 안에 들어가자 입구에 걸린 바싹 마른 우거지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 사는 류경원(31) 씨는 "이 우거지를 잘라서 아침에 국을 끓였다"고 했다.

각 공동체에는 확실한 규칙이 존재한다. 친환경을 지향하는 그린집에서는 채식이 의무여서 고기와 생선은 출입 금지다. 쓰레기 배출도 안 된다. 화장실에서 뒤처리는 휴지 대신 물로 한다. 류 씨는 "휴지가 없어 손님들이 놀러 오면 당황하기도 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1년간 발효시켜서 거름으로 쓴다"며 음식물 통이 있는 발코니 문을 열어 보였다.

이 같은 주거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보자는 '실험 정신'에서 시작됐다. 그만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광고업계 종사자부터 사회복지사, 시민단체 활동가와 대학생, 자발적 실업자까지 한 범주에 넣기 힘들다. 방 개수에 맞춰 각 집에 사는 인원을 3, 4명으로 조절했고, 집집마다 여자가 한 명씩 살고 있다. 부모님 댁이 엎어지면 코닿을 데 있지만 독립해서 사는 이도 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모인 걸까. 2호집인 '물음표집'에 사는 안후영(27) 씨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살고 있는데 아는 사람의 추천을 받아 우리집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원서 받고, 면접 본 뒤 뽑지는 않는다"며 웃었다.

◆남녀가 함께 산다는 것

인터뷰는 2호집인 '물음표집' 거실에서 이뤄졌다. 한참 인터뷰가 무르익어갈 무렵 물음표집의 홍일점인 민뎅(가명'28) 씨와 어머니가 들어왔다. 이날 모녀는 이 집에서 함께 잠을 잤다. "민뎅이 엄마예요~"라고 웃으며 인사하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불편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 부모의 사회적 통념상 남녀가 함께 사는 집에 딸을 보내는 일이 쉬운 선택이 아닐 것 같아 민뎅 씨를 붙잡고 질문을 퍼부었다.

"처음엔 엄마한테 말도 못 꺼냈죠. 이런 공동체에서 산다고 했지 같이 사는 사람들이 남자라고는 못했어요. 한번은 이삿짐 옮기는 일 때문에 엄마가 이 집에 오셔야 했는데 그때 어쩔 수 없이 털어놨어요. 이 집의 목적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했더니 엄마가 정말 '쿨'하게 허락하셔서 오히려 섭섭했어요. 우리 엄마, 벌써 여기 세 번이나 오신 걸요?"

남녀가 함께 살면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있다. 한 번은 '변기 사용법'을 놓고 의견이 갈린 적이 있었다. "화장실의 위생을 위해 남자들도 앉아서 소변을 봐야 한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했다가 "소변을 보고 변기 뚜껑까지 닫아둔다"는 중재안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특히 여자들은 '노출'에 민감해진다. 이곳에 산 지 1년이 다 돼가는 민뎅 씨는 "여자들끼리 있으면 아무렇게나 입어도 신경이 안 쓰이는데 남자들이 있으니 여름엔 불편한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각자 방이 따로 있으니 공동 거실에서 입는 옷차림만 조금 신경 쓰면 된다. 지금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공동체를 향한 작은 민주주의

이 집이 평범한 자취방과 다른 점은 공동체의 목적과 운영 방식 때문이다. 물음표집에 사는 한호승(29) 씨가 우리집의 재정 체계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우리집 세 곳 보증금을 다 더하면 3천만원이에요. 재정은 크게 분담금과 출자금으로 나눌 수 있어요. 분담금은 매월 22만원인데 월세와 생활비, 전기료와 가스비 등 모든 게 포함돼 있어요. 방 크기에 따라 돈을 더 받거나 덜 받지 않아요. 또 출자금은 보증금 격으로 50만~1천만원까지 낼 수 있는데 출자금에 대한 이자를 연 3% 지급합니다. 분담금은 22만원으로 고정돼 있지만 겨울에는 난방비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각 집에서 회의한 뒤 추가 비용을 냅니다."

우리집의 규칙은 공식 회의를 통해 만들어진다. 물음표집 거실벽에 붙은 흰 종이에 남겨진 낙서는 지난 회의의 흔적이다. 각 집의 재정을 담당하는 '살리미' 3명과 전체 총무 1명이 매달 한 번 전체 정기회의를 하고 각 집 사정에 따라 개별 회의를 한다. 한 씨는 "예전에는 만장일치제를 지향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지금은 3분의 2 동의를 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만장일치제를 유지할 때는 2만2천원짜리 신발장 사는데 한 명이 반대하는 바람에 두 달이 걸리기도 했다"며 껄껄 웃었다.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는 '공유'에 있다. 그것이 돈이 될 수도, 마음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에는 '김장기금'을 마련해 김치 60포기를 담가 지금까지 먹고 있다. 최근에는 복지 시스템에 대해 활발히 논의 중이다. 얼마 전 우리집은 회의를 거쳐 '사회안정기금'을 조성했다. 본인이 낸 출자금을 담보로 하는 '무이자 소액대출'과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는 '의료지원금'이 대표적이다. 한 씨는 "얼마 전에 이가 아파서 의료지원금 혜택을 받았다. 구성원 중 누군가 아플 때 최소한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의료복지'인 셈"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는 우리집 식구들의 저녁 밥상에 숟가락을 하나 얹었다. 밥상에는 그린집에서 본 우거지로 끓인 국이 올라왔다. 외로운 도시에서 저녁밥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밥을 같이 먹어야 친해져요." 누군가 말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