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세 아이를 키우는 김은정(40) 씨에게 삶의 무게는 남들보다 몇 배나 무겁다. 경제사정이 넉넉지 않은데다 큰아들과 막내아들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 은정 씨가 자궁경부암을 앓으면서 가족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자신의 몸도 성치 않지만 은정 씨는 오로지 아이들만 생각한다.
◆집을 돌보지 않는 남편, 아픈 큰아들
경북 영주에서 태어난 은정 씨는 20세 되던 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대구로 왔다. 주말마다 가던 교회에서 전 남편을 만난 것도 같은 해였다. 다섯 살 위의 남편과 만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결혼까지 했고, 21세 어린 나이에 첫 아들을 얻었다. "너무 어린 나이라서 사실 남편이 좋은지 어떤지도 모르고 결혼했죠. 그래도 아이가 태어난 건 너무 기뻤어요."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은정 씨 삶은 고통으로 얼룩졌다. 남편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고, 생활비조차 제대로 가져다주지 못했다. 은정 씨가 식당일과 부업을 해가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곧이어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큰아들이 중증 지적장애 진단을 받은 것이다. 2년 터울로 둘째 딸이 태어났고, 또다시 2년 뒤 셋째 아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셋째 아들마저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편과 지적장애를 앓는 두 아들 때문에 은정 씨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냥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그렇게는 못하겠더군요. 어떻게든 내가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지라는 생각으로 아득바득 버텼어요."
◆혼자서 세 아이를 돌보는 은정 씨
은정 씨의 삶은 오롯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19세가 되도록 누군가가 돌봐주지 않으면 혼자 식사를 할 수도 없고, 바깥에 나갈 땐 기저귀를 차야 하는 큰아들은 24시간 은정 씨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다행히 착하고 바르게 자란 딸이 엄마와 함께 오빠를 돌봐줬고, 지적장애가 심하지 않은 막내는 애교와 재롱으로 은정 씨에게 힘이 돼줬다.
"큰아들은 물건을 못 쓰게 만들거나 위험한 물건을 만지는 등 아기 같은 행동을 해서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어요. 막내는 엄마를 돕겠다고 빨래를 하는데 형이 찬 기저귀를 넣고 세탁기를 돌려 빨랫감을 망치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요."
은정 씨가 세 아이를 돌보는 동안 남편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주 술을 마셨고 은정 씨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고 살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가장이 아니라면 아이들의 교육에 오히려 나쁠 것이라는 결심을 하고 5년 전 결국 남편과 갈라섰다. "차라리 혼자 키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아빠가 물건을 부수거나 엄마를 때리는 모습을 보는 건 아이들 교육에 좋을 리 없잖아요. 이혼을 하고서 정말 오롯이 아이들만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자궁경부암 판정에도 아이들 걱정뿐
홀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은정 씨는 기초생활수급과 아들의 장애수당 등으로 월 100만원가량을 받을 수 있었다. 100만원이면 작지 않은 돈이었지만 월세와 공과금 등을 내고, 네 가족의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일정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은정 씨는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고물과 파지를 주워 생활비를 보탰다.
"아이들에게 고기반찬이라도 먹이려면 고물을 줍는 일이라도 해야 했어요. 새벽 3시까지 돌아다니는 걸 보고 동네 분들이 고물을 모아주시기도 했죠. 그때는 힘들어도 먹고살 만은 했어요."
하지만 올 1월 가족에게는 더 큰 시련이 닥쳤다. 은정 씨가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수술비는 지원제도를 통해 해결했지만 치료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다 보니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지난 5월부터는 그나마 받던 기초생활수급비마저 끊겨버렸다. 은정 씨의 친정 부모님 재산이 기준액을 넘어가면서 수급자 조건에서 탈락한 것이다. 돈 걱정 때문에 은정 씨는 암 수술 후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부모님에게는 전혀 도움을 받지 않고 있는데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왔어요. 항암치료를 받으며 몸이 약해져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너무 막막해요."
기초생활수급이 끊기면서 은정 씨 가족은 아들 앞으로 나오는 30만원 남짓한 장애수당으로 생활하고 있다. 월세는 엄두도 못 내고, 식탁에 올라오는 건 밥과 김치뿐이다. 그나마 성치 않은 몸으로 은정 씨가 돌보는 텃밭에서 가져오는 상추 등 채소가 가끔 올라온다.
"텃밭이라도 있어서 애들 채소라도 먹이죠. 큰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장애시설이라도 가야 하는데 한 달에 50만원이나 든다고 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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