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현충일 행사가 열린 날은 1956년이었다. 이승만정부가 이날을 현충일로 정한 것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달이 6월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24절기 중 망종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예부터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현충일이었던 1956년의 망종 날이 6월 6일이어서 이날로 정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뜻깊은 행사에 이승만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대통령의 추도사도 생략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그 전달인 5월 15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한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대통령 선거 출마를 강행, 야당인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와 대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력한 후보였던 신익희가 선거운동 도중 갑자기 숨지면서 이승만이 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득표수를 본 이승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신익희 후보를 추모하는 표가 185만 표나 나온 것이다. 그 185만 표는 물론 사표가 되었지만 이승만은 그런 민심을 괘씸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사오입 개헌을 주도한 이기붕 당시 국회의장의 모습도 이 자리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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