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보리 굴비 정식

여름철 입맛이 떨어지면 좀 산다 싶은 사람들은 보리굴비를 구워 얼음 띄운 녹찻물에 말아먹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물에 밥 말아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한 끼를 때우기도 한다. 아무래도 매콤한 청량고추에 된장 푹 찍어먹는게 경상도식 간단 여름나기 식사라면, 넓은 호남들과 조기가 주로 잡히는 사해안에 연한 전라도 쪽에서는 주로 보리굴비가 여름 별미이다.

호남에서 서울과 경기도로 상경한 보리굴비 정식은 잡내가 나지 않는 조기맛에 녹차물에 말아먹는 음식셕이 있어 대부분 접대용 여름음식으로 인기이다. 반찬은 된장에 젓갈이 따라나온다.

대구고검장 시절, 재소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과 소액후원 제도를 개발한 소병철 농업대 석좌 교수가 법무연수원장이던 시절 법무연수원 이근 식당에서 보리굴비 정식을 같이 먹은 적이 있다. 그 식당에서는 제대로 보리짚에 숙성시킨 보리굴비를 적당하게 구워서 뜯어 먹기 좋도록 일회용 장갑까지 준비해두었다. 잘 우려낸 녹차물에 밥 말아먹는 정취도 정갈했다.

최근에는 이 보리굴비 정식이 대구에도 내려왔다. 얼마전 본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에 있는 미디어그룹 닝보일보 사장단 일행이 본사와 대구시를 방문했다. 인구가 1천만명에 달하는 닝보시는 메디시티를 지향하는 대구의 모발이식과 의료관광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오는 7월 6일 부터 중국 동방항공의 전세기로 대구-닝보간 직항로가 처음 열려, 양 도시가 문화·경제·관광에 대한 인적, 물적 교류가 왕성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드는 가운데, 닝보일보 사장단 일행을 대구시내 모 한정식 집으로 모셨다. 정원이 아름답고, 개별 룸으로 되어 있어서 손님접대용으로 안성맞춤이 이 식당에서 점심으로 보리굴비정식이 나왔다.

그런데 이집의 보리굴비 정식이 좀 이상하다.

보리굴비 자체도 좀 작고 너무 바싹 구운 느낌이 들어서 좀 초라하다 싶은 기운을 느끼며 중국인들의 안색을 살펴보니, '이 뭐꼬'하는 표정이다. 보리굴비에 필수인 찬물도 얼음띄운 녹차물이 아니라 숭늉이다. 반찬으로 젓갈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종전, 이집에서 나오던 한정식 메뉴에 그냥 보리굴비를 구워 곁들이는 방식이었다.

보리굴비의 유래와 맛의 효능에 대해서 알 길 없는 중국인들은 딱딱하게 구워진 보리굴비에 대해서 큰 호기심이 당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녹찻물과 젓갈이 들여지지 않고, 숭늉과 같이 나온 보리굴비 정식은 짝이 맞지 않았다. 민망한 마음에 보리굴비 살을 발라서 닝보일보 사장의 접시에 집어주고, 나름 신경을 썼더니 보리짚에서 숙성된 굴비의 식감을 찬찬히 느끼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됐다 싶었다. 보리굴비는 선어로 구워먹는 조기와는 달리 쫄깃한 식감이 독특하다.

그날 저녁, 대구관광협회장인 홍호용 스파밸리 대표가 닝보일보사장단 일행을 초청하여 스파밸리 내 한옥식 테마호텔 포레스트 12 앞 가든에서 연 바베큐파티 석상에서 허웨이(何偉) 사장은 보리굴비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맛이 독특했다"고. 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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