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국가안전처가 아니라 국민안전처다

모두가 가슴 졸이며 치렀던 지방선거는 그야말로 여야 모두에게 '절반의 성공'과 '속 깊은 상처'를 남기고 끝이 났다. 여당은 충청 전역을 잃었지만 그나마 경기 인천 부산에서의 승리로 겨우 패배를 면했다. 야당은 광주를 지켜냈지만 수도권과 강원도에서의 약세에 진한 충격을 받았다. 단체장 선거와 함께 치러 정치색이 너무 짙어진 교육감 선거에서는 일찌감치 단일화를 한 진보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는데 이는 '공익'의 중요성을 경시하고 명예욕과 어설픈 자신감으로 자제력을 상실한 보수 후보들에게는 예정된 귀결이었다.

따지고 보면 막판의 박근혜 마케팅 효과와 여'야 모두에 대한 경고 카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박근혜정부가 위험하다는 읍소에 가까스로 새누리당이 방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비판 및 정권퇴진론에 일말의 억울함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 다시 한 번 일어날 기회를 준 것인데 그 소중한 선택을 맞이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자세는 국민들의 기대와 바람을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와 눈물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게 나왔고 수습책은 너무 많았고 어수선했다. 해경 해체 선언은 지나친 바가 있었고 정부 조직 개편 기조는 단 며칠 만에 변경되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두 달이었을 것이다. 원래 4월 말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통일은 대박이다'를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규제 완화, 경기 활성화 등 국정 어젠다를 실행하고자 했을 터인데 수십 년간 쌓여온 고질적인 적폐의 노출로 인해 단박에 헝클어져 버린 것이다.

국민검사로 신뢰받던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초반에 어이없이 나가떨어져 버리고, 이후 문창극 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들은 과거 행적과 석연치 않은 해명으로 일관해 사면 포화에 시달리고 있다.

청와대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때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일리 있는 비판은 고맙게 받아들이면 된다. 총리 자리에 어울리지 않을 사람이라고 국민들이 미리 평가해주니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런 인물이 총리가 된들 국정이 잘 굴러갈 리 만무하다. 야당만 반대하면 정치공세로 보겠지만 국민과 소통하는 차원에서도 '검증에 문제가 있었으므로 사과드리며 국민들의 관심에 감사드린다'는 청와대의 입장이 나오면 국민들은 수긍을 할 것이다.

당선된 광역자치단체장들의 목소리에 정치권 전체는 주목해야 한다. 경기도 남경필 지사 당선인은 야당 인사에게 사회통합부지사를 맡기겠다고 했고,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인은 정책 및 인사 연정을,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인은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을 하겠다고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인은 "여든 야든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세월호 참회는 여야 보수 진보 정파 모두에 해당된다"고 꼬집었다. 이들의 '지방발 연정(聯政) 시도'가 취임 초반의 사탕발림이 아니라 임기 내내 지속되기를 바라며 '통합'과 '조화'의 희망을 찾아내고 싶다.

그리고 국가 대개조, 국가안전처 등 국가를 지나치게 앞에 내세우는 것은 국민과 시민사회로부터 쉬이 환영받기 어렵다. 우리 대한민국은 국가 주도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쳤지만 이제는 시장과 시민사회가 상당히 성숙한 사회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시민들은 국가 대개조라는 슬로건보다는 '썩은 부분 도려내기'와 '적폐 해소를 통한 기회의 균등'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만의 이익'을 팽창시키고 '끼리끼리' 다 해먹었는지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제도적 절차와 투명한 감시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바람인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국가안전처는 국민 안전이 최고 목표이므로 '국민안전처'로 바꿔야 한다. 미국이 9'11 테러 이후에 '국토안보부'를 설립했지만 이는 내외의 적(敵)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한다는 개념이었다. 우리는 각종 사고와 재난에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부서이니만큼 '국민안전처'가 더 적절하다. 그리해야 국민 마음속에 더 파고들고 안도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김성수 인제대 인문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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