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노숙-김사인(1956~ )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우리는 편의상 몸(Body)과 마음(Mind)을 나누지만 실상 사람의 몸과 마음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존재하기에 몸이 마음이고 마음이 몸이다. 이 시는 마음이, 삶에 지친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말을 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사인 시인은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시하다'라는 말로 대답한다. 바꾸어 말하면 가장 절실한 언어가 시라는 말일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가장 낮은 자세로 임하여 인간의 몸을 대하고 있다.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안은 마리아의 포즈다. 시 속의 몸은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었지만 가장 귀한 가치로 읽힌다. 대상을 대하는 시인의 진정성이 사무치는 시다. 우리도 가끔 자신의 몸을 향해 '어떤가, 몸이여'라고 물어봐야 할 것이다.  

시인 kweon51@chol.com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민의힘 내부에서 장동혁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은 장 대표를 중심으로 결속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세계, 현대, 롯데 등 유통 3사가 대구경북 지역에 대형 아울렛 매장을 잇따라 개장할 예정으로, 롯데쇼핑의 '타임빌라스 수성점'이 2027년,...
대구 지역 대학들이 정부의 국가장학금 Ⅱ유형 폐지에 따라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며, 장기간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부담이 심각한 상황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