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최된 한 포럼은 에너지장관을 비롯한 정책관계자, 관련 기업가와 투자가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테슬라 모터스가 주관하는 행사로, 이 회사 창업자 겸 CEO인 엘런 머스크의 인기를 실감하는 자리였다. 엘런 머스크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잇는 혁신의 아이콘이다. 전기차의 상용화 규모와 시기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보인 시장의 예측과 달리, 7만 달러대의 모델 S를 출시해 동급 승용자동차 미국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우주생활시대를 열겠다며 민간 우주선을 개발하고 있는 '스페이스 엑스'도 엘런 머스크가 창업했다. 이 두 회사는 미국과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이 됐다.
실리콘밸리에는 테슬라 모터스 외에도 세계적인 벤처기업들이 즐비하다. 애플, 야후, 구글, 페이스북 등 팔로알토, 마운틴 뷰에서 산타클라라로 이어지는 실리콘밸리에는 수만 명의 스타트업 벤처가 기술 개발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유망한 기업을 선별해 투자하기 위해 밤낮으로 정보를 캐고 다니는 1천500여 개의 벤처캐피털이 지난 한 해 동안 250억 달러(한화 약 25조 원)를 펀딩했다. 이와 같은 성공 벤처들이 있기까지 실리콘밸리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필자의 제한된 경험이지만 실리콘밸리의 성공에는 네 가지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스티브 잡스, 엘런 머스크와 같은 출중한 벤처 리더의 등장이다. 꿈과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열정, 스펙 쌓기를 넘어선 사업가 정신, 정부의 지원이 아닌 자본시장의 지원에 의해 생성된 풀뿌리 기업 정신으로 무장한 것이 공통점이다. 대학이 요구하는 필수과목보다는 활자체와 관련된 과목을 더 많이 수강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한 미혼모의 아들 스티브 잡스, 1971년 남아공 태생으로 스탠퍼드 대학원 응용물리학과를 중퇴하고, 황당한 꿈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던 전기자동차와 우주 정복의 꿈을 실현하는 데 일생을 건 엘런 머스크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을지 자문해 본다.
둘째, 우수한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의 크고 작은 벤처기업에 몰려온다. 이 지역 공과대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 선호도가 사뭇 눈길을 끈다. NASA나 스페이스 엑스 취업이 1번, 테슬라 모터스나 구글, 페이스북이 2번, 벤처창업이 그 뒤를 잇는다. 이름 있는 대기업이나 공무원보다는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에 더 많은 우수 인재들이 모여 벤처기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셋째, 창업에서 벤처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만큼의 돈이 필요한 때에 공급되는 자본시장이 잘 발달돼 있다. 창업 초기에는 창업자와 평소 가까이 지내온 개인 에인절투자가가 중심이 되어 그 에인절과 네트워크를 쌓아온 몇몇 에인절들이 개별로 몇십만 달러씩 출자해 위험 부담을 나눈다. 상업화 가능성이 높아져서 초기 시설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벤처캐피털이 몇백만 달러씩 투자한다. 투자기업의 마케팅과 경영관리를 도와주기도 한다. 상업생산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벤처캐피털들이 몇 배수의 프리미엄을 내고 추가 투자를 이어간다. 창업주와 에인절 및 벤처캐피털들의 투자 원금 회수는 나스닥에 상장하기보다는 다른 기업에 인수 합병되는 형태를 띠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넷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어 있어 유망 기업이 발굴되어 투자가 이루어지고 인수합병이나 성장을 하는 과정이 원활하고, 정보 수집과 평가 비용이 적게 드는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다. 실리콘밸리의 심장부인 팔로알토에서 스탠퍼드 대학으로 연결되는 대학로를 따라 수많은 벤처캐피털과 벤처기업이 몰려 있다. 에인절들, 벤처캐피털들, 벤처기업인, 대학 연구원들이 평소에 삼삼오오 모여서 신기술 동향, 신기술 응용산업의 흐름, 잘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평소 정보의 교환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과 벤처투자가 간의 정보 흐름이 원활해 정보의 비대칭에 따른 투자 위험이 낮은 것이 벤처투자 활성화의 비결인 것이다.
한국판 실리콘밸리는 정부가 첨단산업단지 하나 건설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음과 지혜를 모아 벽돌 한 장씩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마법은 없다.
최명주/포스코기술투자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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