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임(66) 씨의 다리에는 수많은 흉터와 멍 자국이 남아있다. 60대에 들어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앞에 있는 물건에 박거나 청소일을 하다 다리에 독한 화학약품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온전치 않은 몸으로 이 씨는 치매 때문에 24시간 주시해야 하는 남편과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손자를 돌봐야 한다. 남편에게도 손자들에게도 챙겨줄 사람이 이씨뿐이기 때문이다.
"시신경이 손상되고 있어 날이 갈수록 눈은 보이지 않는데 남편의 치매는 심해지고,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 앞날이 걱정이야. 불편하지만 몸을 움직여야 아이들 입에 간식이라도 하나 넣어줄 수 있으니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잖아…."
◆새벽마다 3시간 거리 걸어 노점상
이 씨의 인생에는 돈, 명예 등 부족한 것은 많았지만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항상 웃는 얼굴로 살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무작정 도시로 옮기자는 남편과 대구로 왔을 때도 이 씨는 불만 한마디 없었다. 남편이 생활비를 제대로 가져다주지 못했을 때도 이 씨는 군말 없이 스스로 돈을 벌었다.
아이 넷을 키우기 위해 이 씨는 새벽마다 리어카를 끌고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시장까지 걸어가 두부, 과일을 떼다 노점에서 팔았다. 노점으로 번 돈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정도였지만 이 씨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그래도 그 돈으로 애들 밥 먹일 수 있었으니깐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지나고 나니깐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내 몸이 건강했으니깐 웃고 살았지."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라 독립할 나이가 되면서 여유가 생길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10년 전쯤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이 씨의 인생은 고비를 맞았다. 남편은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뇌수술까지 했고 이때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게다가 자식들이 이혼이나 암 투병 등 아픈 일을 겪으면서 이 씨의 그늘은 더욱 커졌다.
◆서서히 시력 잃어
아픈 남편을 돌보는 일도 버거웠던 이 씨는 아들이 이혼하면서 두고 간 손자들까지 맡게 됐다. 첫째가 4살, 둘째는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남편이 퇴원하면서 이 씨는 둘째를 업고 다시 노점상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먼 거리를 리어카를 끌고 걸어다니고 무거운 과일 상자를 옮기는 등 혹사한 이 씨도 점점 몸이 상해가기 시작했다. 60세를 전후해서는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고, 60대에 접어들어서는 허리디스크로 더 이상 힘든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이 씨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 중에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게 됐지만, 시집간 큰딸이 근로능력이 있다는 것 때문에 4명의 가족이 70만원 남짓한 돈을 받는다.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보니 손자들 아이스크림 하나 사줄 수도 없어 마음이 아팠던 적이 많았지. 중학생이면서 일찍 철이 든 큰놈도 어리다 보니 가끔 컴퓨터가 갖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해줄 수가 없어서 너무 안타까워."
결국 이 씨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몸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부쩍 치매 증세가 심해진 남편 때문에 김치를 담가 노점에서 팔거나 새벽에 건물 청소를 하는 등의 일밖에 하지 못한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손자들이 과자를 먹고 싶다면 천 원 한 장이라도 걱정 없이 꺼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이 씨는 힘든 줄도 모른다.
◆손자들을 돌봐줄 수 없을까 봐 눈물
풍족하지 않은 삶에 만족하고 살았던 이 씨이지만 요즘에는 걱정 때문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다.
시신경이 점점 손상되면서 눈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지만, 수술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장애물에 부딪히는 등 위험한 상황도 펼쳐진다.
이 와중에 남편의 치매 증상은 심해져 손자들을 알아보지 못해 존댓말을 쓰고, 혼자 집을 나선 뒤 길을 잃기도 한다. 건강은 나빠지고 있지만 손자들은 아직도 어리고 어른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남편의 치매 증상이 더 악화되면 전문적으로 돌봐줄 수 있는 병원에 입원해야 하지만 당장 돈 걱정이 앞선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월세나 공과금 한 번 밀리지 않을 정도로 반듯하게 사는 이 씨이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손자들을 돌봐줄 수 없을까 하는 두려움에 눈물을 훔친다.
"돌봐줄 사람도 없는 애들인데 내가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오히려 짐이 될까 봐 무섭지. 남편이 병원에 가게 되면 돈도 걱정이고. 제발 큰놈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라도 지금 상태만 유지할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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