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들어오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을 때보는 거였다. 문태준 시인의 시 '불만 때다 왔다'에는 '앓는 병 나으라고/ 그집 가서 마당에 솥을 걸고 불만 때다 왔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시를 읽은 뒤로 불을 지피는 일에 대한 나만의 환상은 더욱 더 키가 자랐다. 아궁이 속에 불꽃이 지펴질 때 솥에서 익어가는 것은 음식뿐만이 아니라 그 음식으로 인해 따뜻해질 사람들과의 관계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 있는 아궁이는 손님들이 왔을 때 닭이나 돼지고기를 삶아내는 구실을 한다.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면 그 힘으로 솥뚜껑이 들썩거리고, 이때쯤이면 집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당으로 나오게 된다. 불빛이 주는 다정함에 이끌린 지인들은 아궁이 앞에 선 채로 거리낌 없는 대화를 나누고 그 뒤로 커다란 웃음이 퍼져 나가는 즐거운 공간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무청 시래기를 삶아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 자주 집안에 굴러다니는 파지류를 모아서 태운다. 우리 마을에는 목요일 아침마다 쓰레기 수거차가 들어와 일반 쓰레기는 물론 재활용 쓰레기들을 가져간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휴지와 파지들은 밖에 내놓지 않고 아궁이에 넣어 태운다. 이때 굴뚝에서 나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하얀 연기를 보면 내가 그렸던 시골 정취의 정답을 찾은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해진다.
휴지를 태울 때면 여기저기 구석에 쌓인 나뭇가지나 나뭇잎들을 찾아서 아궁이에 넣게 된다. 이런 날에는 일부러 집안을 한 바퀴 돌며 태울 만한 것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요즘 들어서는 마당에 굴러다니는 비닐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조각들까지 집어넣게 되었다. 비닐수거봉투에 넣는 것보다 아궁이에 집어넣는 것이 더 편하기도 하고 사위어 가는 불꽃을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활활 타오르는 불빛 앞에서 한없이 순화되어가는 나 자신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도 좋았다.
이런 내 뒤통수를 야무진 주먹으로 '탁'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된 것은 화요일마다 가는 영농기술센터에서다. 감 농사 강의를 맡은 강사님은 강의에 앞서 꼭 말할 것이 있다는 서두를 꺼낸 후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시골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보내는 농산물에는 농약을 한 번이라도 덜 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집이나 논밭 근처에서는 갖가지 쓰레기들을 모아서 태우지요.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이 섞여 들어간 쓰레기를 태우면 인간이 만든 물질 중에서 가장 위험한 독극물인 다이옥신이 나온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이 다이옥신은 공기보다 무거워서 멀리 가지 못하고 근처에 다시 내려앉습니다. 그 흙에서 자란 풀을 가축이 먹고 다시 사람이 먹는 거지요. 사람의 몸에 한 번 들어온 다이옥신은 30년 이상 체내에 머무르면서 암을 비롯해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킵니다.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농약 걱정은 하면서도 쓰레기는 아무렇지 않게 태우고 있습니다."
도시보다 널찍한 공간으로 인해 작은 쓰레기 정도는 편하게 처리하려 했던 내게 다이옥신에 대한 강의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생각 없이 아궁이에 넣었던 비닐과 플라스틱 조각들이 유해한 물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사흘 내리 내리던 장맛비가 물러간 하늘이 쾌청하다. 옥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저수지 둑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시내로 나가는 큰길까지 환하게 눈에 들어온다. 맑아진 공기 덕분에 한층 멀리까지 보이는 저 선명한 풍경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지금은 내 눈이 그것을 담고 있지만 100년 뒤, 혹은 더 먼 미래에 다른 이들도 마땅히 누려야 할 자산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았어야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눈앞의 현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길게 이어져 있음을 좀 더 일찍 기억해 냈어야 했다. 아궁이 앞에 앉아 파지를 태우며 슬쩍 내보이려던 내 이기심이 크게 사레들리는 순간이었다.
배경애(귀촌 2년 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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