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개인 우상화의 위기

2011년 말에 김정은이 북한 권력을 넘겨받았을 때 나는 대부분의 북한학 연구자들의 생각처럼 당분간이나마 그가 단지 장성택이나 다른 경험 있는 고급관리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몇 주 지나지 않아 그야말로 그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북한 선전의 질이 급속히 저하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북한의 문화전통을 잘 모르는 외국인에 의해 선전기관이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북한의 개인 우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장성택이 배후에서 조종을 하고 있었다면 김정일 시대와 같은 세련된 선전사업을 지속시켰을 것이다.

김정은이 실권을 장악하기가 무섭게 미숙함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이 1년 동안 엄숙한 태도를 유지한 반면 김정일의 사망 후 석 달도 지나지 않아 김정은이 활짝 웃으며 놀이공원을 활보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어린 아내인 리설주와 나란히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를 본 한 탈북자가 개인 우상화가 깨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 것이 한국언론에 나왔다. 북한 선전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나도 크게 놀랐다. 1949년 김정숙이 죽은 후부터 김일성이 개인 생활을 포기하고 오직 인민을 위해 살고 있는 것처럼 선전되었었다. 김정일의 더욱더 헌신적이고 외로운 이미지가 그의 카리스마에 큰 기여를 하였다.

어리고 내세울 만한 업적이 없는 김정은은 적어도 몇 년간은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선군 지도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과묵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북한주민들에게 자신의 행복함을 과시하는 것을 일삼아 왔다. 그러면서도 외국인 방문자 앞에서는 북한의 존엄성이 깎일 정도로 겸손해 보이기도 한다. 김정일 시대의 선전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물론 이런 행동들도 나름대로의 선전 전략의 일환이다. 고난의 행군을 겪어 온 북한 주민들에게 이제라도 허리띠를 풀고 좀 더 느긋한 생활을 누려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선군 지도자가 나서서 새 시대의 느긋함을 직접 구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실수가 그것뿐이겠는가. 자신의 목소리가 방송에 안 나오게 하는 것으로 신비로움을 더해준 김정일과는 다르게 성의없이 연설문을 읽어 내리는 김정은의 목소리가 이미 몇 번이나 방송되었다. 나이 많은 장군들 앞에서 다리를 있는 대로 쫙 벌리고 담배를 피우거나 북한주민들은 신발을 벗어야 들어가는 병원 병실을 구둣발로 들락거리는 김정은의 행태도 그대로 공개되었다. 김정은은 이런 식의 선전으로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고 탈북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여태까지는 외부세계가 북한 문화의 이런 변화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김정은이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독재자인 만큼 민심에 대해 별로 신겅 쓰지 않아도 그의 정권이 흔들릴 리가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의 선경(先經) 사상 때문인지 우리는 북한 문화보다 북한 경제에 초점을 맞춘다. 북한이 중국과 베트남처럼 경제를 계속 개혁하기만 하면 외부세계에 대한 적개심이 저절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옛날 공산권과 아주 다르다. 2002년 경제개혁을 시작했을 때부터 북한의 호전성이 오히려 심화돼 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경제 특수성을 상실해 '3류판 한국'으로 전락할수록 체제와 지도자의 우월성을 선군 방법, 즉 무력 도발로 과시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2000년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을 다루는 북한 선전선동부가 내부선전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절뚝거리는 걸음을 한국 쇠퇴의 상징으로 비웃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며칠 전에 김정은이 다리를 약간 절며 가는 모습이 북한 TV에 나왔다. 그의 다리보다 선전선동부의 문제가 훨씬 큰 것 같다.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이런 안 좋은 장면을 왜 굳이 보여줘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 정권의 이런 어설픔을 흐뭇하게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김정은의 카리스마 손실이 결국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마이어스/동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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