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작가의 소설 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 에서 우리는 명성과 영광으로 점철된 노시인 '적요'의 은밀하되 강렬한 욕망을 본다. 칠십을 넘긴 나이의 무너지고 피폐한 육신의 적요. 그에게 '국민시인'이라는 호칭은 허망하게 덧댄 색 바랜 헝겊에 지나지 않는다. 적요에게 지나간 청춘의 육신과 사랑을 일깨워주는 것은 열일곱 처녀애 은교의 탄탄하고 육감적이며 매혹적인 몸이다.
영화에서 관객은 적요의 고독과 무기력뿐 아니라, 은교를 향한 바닥 모를 욕망을 들여다본다. 혹자는 그것이 생경하거나 추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혹자는 그것이 살아있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이해할 것이다. 젊고 건강하며 아름다운 육신에 이끌린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명징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욕망'의 시야를 넓혀보자.
현 정부의 대표적인 '인사 참극'으로 불린 총리 후보자 문창극의 욕망은 어떤가. 그는 2011년 자신이 장로로 있는 '온누리 교회' 강연에서 대한제국의 식민지 전락을 정당화했다. "하나님께서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하고 항의할 수 있겠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며 일본의 식민 지배가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바꾸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정객 아베 신조의 하수인 같은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낸 것이다.
"하나님이 남북 분단을 만들어 주셨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발언의 근거를 명쾌하게 밝히기도 했다.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라며,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는 게 우리 민족의 디엔에이(DNA)로 남아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국인은 태생적으로 게으르고 무능하여 남한테 기대 사는 게 습관화되어 있는, 미개하고 열등한 종족이란 게 문 씨의 확신이다. 덧붙여 미군 주둔 없는 한반도는 생각할 수 없다는 사대 근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유력 신문 논설주간과 주필을 지낸 인사의 민족 비하 발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숨죽이고 국민 여론의 동향을 주시했다. 한반도 전체를 분노와 통탄의 도가니로 몰고 간 황당한 일장활극이 열흘 넘도록 진행되기에 이른다. 그가 후보 자리를 사퇴할 의향이 없음이 분명해지자 청와대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진 사퇴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전개된 사태 진전은 독자 여러분이 숙지하실 터.
이번 사태를 통해서 필자는 노년의 또 다른 욕망을 생각하게 되었다. 1948년생인 문 씨는 올해 67살 노인이다. '이순'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곧 칠순을 바라보는 연배의 노년에게서 풍겨 나오는, 썩은 내 진동하는 권력욕의 민낯을 보고 적잖게 황망했다. 끈끈하고 검질긴 그의 욕망에 내재한 밑바탕을 생각한다.
의 노인 적요는 자신의 욕망을 오롯이 홀로 감당한다. 독한 소주로 내장과 육신과 영혼을 학대하기도 하면서! 기댈 사람 하나 없이, 외떨어진 산장에서 술병에나 의지하면서 욕망을 제어했던 노년의 고독은 몸서리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욕망은 쓸쓸하되 정갈했으며, 은교와 함께였으되 언제나 홀로였으며, 낯설되 추하지 않았다.
문 씨의 욕망은 적요의 욕망과 사뭇 다른 것이었다. 민족과 역사를 팔아서 개인의 영광과 출세를 끝내 유지하려는 처절한 몸부림 아니었던가. 이태의 을 표절한 에서 이병주가 뇌까렸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문 씨였다. "조선놈은 공산당 할 자격도 없어!" 그런 민족 허무주의자, 식민사관 소유자, 사대주의자의 타락한 욕망과 결탁했던 청와대와 대통령이라니! '세월'이 간다. 무상하게 세월이 가고 또 간다. 노년의 욕망을 싣고 세월이 간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노어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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